역대이효석문학상 수상자

제16회 수상작가 전성태

메밀꽃 필 무렵 2018. 5. 15. 13:48

제16회 이효석 문학상(2015년)




수상작
전성태(全成太)『두 번의 자화상』

기존의 '이효석문학상수상집'과 책표지가 다름. (창비사 발행)



                                                                             

작가 약력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4년 『실천문학』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소설집 『두번의 자화상』,『늑대』,『국경을 넘는 일』,『매향(埋香)』,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산문집『세상의 큰형들』등이 있음.
신동엽문학상, 무영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을 받음.

상금
5,000만원

운영위원회
위원장 이상옥(이효석문학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위 원 이우현(재단 상임이사, 可山 李孝石의 장남)
위 원 이영춘(재단이사, 시인)
위 원 성석제(재단이사, 소설가)
위 원 허 연(매일경제 문화부 부장, 시인)

심사위원회
위원장 : 오정희(소설가)
위 원 : 임철우(소설가) 이순원(소설가) 정홍수(문학평론가) 신수정(문학평론가) 이수형(문학평론가) 백지연(문학평론가)


심사후보작 : (작가명 가나다 순)
김성중 『국경시장 』, 문학동네, 2015. 2
김채원 『쪽배의 노래』, 문학동네, 2015. 1
박솔뫼 『도시의 시간』, 민음사, 2014. 11
서성란 『침대 없는 여자』, 실천문학사, 2015. 5
이승우 『신중한 사람』, 문학과지성사, 2014. 7
이장욱 『기린이 아닌 모든 것』, 문학과지성사, 2015. 4
전성태 『두 번의 자화상』, 창비, 2015. 2

수상소감
여자는 다급하게 말했다. 띄어쓰기도 마침표도 없는 문장을 외듯이 해서 나는 전화 끊을 틈을 못 잡고 끙끙거렸다. 수신자의 그런 심리를 노린 화술이겠지만 나는 이런 전화를 받을 때 끝까지 들어주는 게 도리인지, 미리 거절 의사를 밝혀 상대의 수고를 덜어주는 게 나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무더운 대낮이었고 나는 손에 물걸레를 들고 있었다. 이윽고 여자가 대출을 이용해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필요 없는데요.” 하고 대답했다. 감사하다고 여자가 마지막 대답까지 성의껏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끝까지 응대해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거절 의사를 듣자마자 상대가 거칠게 전화를 끊어서 기분도 상하고, 더 일찍 의사를 밝힐걸 그랬나 하는 자책이 밀려왔다.

나는 걸레를 털어서 볕에 널었다.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또 대출광고 전화겠지, 짐작하면서 행여 그렇더라도 받아줄 생각이었다. 나는 지금 회의 중이거나 바쁘지 않으니까.
전화는 아주 멋진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전화를 끊고 청소를 마친 책상 앞으로 물러나 앉았다. 조건이 참 좋았다. 집이나 신용을 담보로 하지 않고, 봄에 묶어낸 소설집을 보고 한 해는 족히 창작에만 전념해도 좋은 거금을 주겠다고 한다. 물론 창작에 게으르거나 못난 글을 내놓는다 해서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더구나 보증인들이 평소 존경하는 문단의 선생님들과 동료들이다. 나는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땀을 닦으며 내게 찾아온 행운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책상이나 방을 청소하고, 하다못해 컴퓨터 바탕화면의 폴더들을 정리한다는 건 소설 쓰기가 잘 풀리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슬럼프는 늘 있는 것이고, 작가는 슬럼프를 나이테처럼 새기며 성장한다고 여기며 지내왔다. 그래서 웬만한 부진에는 두려워하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년 재작년은 작업실 청소만 열심히 하고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았다. 몸이 책상을 거부한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신인 시절에는 슬럼프가 오면 주위에 엄살도 늘어놓으며 위로를 받았지만 이제는 그런 걸 누구에게 얘기하는 것도 겸연쩍어 혼자 앓고 지냈다. 마감을 지키지 못한 원고도 생겼고, 기신기신 써낸 원고는 성에 차지 않았다.

마흔 살을 앓는가? 차례로 부모상을 치른 탓인가? 작가생활 이십 년 만에 열정을 잃었나?『두번의 자화상』에 열두 편의 단편이 실리고, 책 묶기까지 육년이 걸린 것도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였다. 소설집을 정리해 출간하고, 장편소설 연재를 준비하는 동안 조금씩 책상에 당겨 앉게 되었다. 그런 처지를 돌이켜보자니 이 상이 참으로 무거워서 식은땀이 났다.

십년 전 반년 기한으로 몽골로 떠날 때『모던수필』(2003, 향연)을 챙겨갔다.『모던수필』은 평론가 방민호 형이 ‘낡은 지면’이라 일컬으며 일제시대, 그러니까 우리 문학의 새벽에 문인들이 쓴 산문들을 발품 팔아가며 찾아 엮은 선집이다. 방민호 형 자신이 글을 쓰는 자로서 고통스럽고 공허할 때 위안을 받은 글들, 작가의 삶과 태도를 독려하는 글들을 선별한 것으로 아직 작가의 길에 의문과 의심이 많았던 나로서도 우정의 선물처럼 귀하게 여겨졌다.

당시 나는 독자들과 출판사들이 내 소설들을 반기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면 어쩌나, 하는 위기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첫아이도 태어난 때라 은근히 살림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추운 겨울 반년을 북국에 엎디어 지내며 문향(文香) 그윽한『모던수필』을 무슨 묵은 편지처럼 자주 들추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방민호 형을 위시해 젊은 선후배들이 밤새 어울리며 술주정으로라도 서로를 독려하던 살갑던 시간들이 그리웠다.

『모던수필』에는 일제의 겨울 동안 문인들이 창작에 고심하고 남루한 생활을 꾸리고 그리고 조그마한 조선 문단이 서로 동무를 챙기는 자취들로 선연했다. 그때는 아직 분단 전이라 작가 면면에 뒷날 몰년(沒年)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문인들이 부지기수였다. 김기림, 김동석, 김동환, 박태원, 박팔양, 백석, 안회남, 오장환, 이기영, 이태준, 정지용, 지하련, 한설야…… 세계문학사에 이런 기이한 비극이 또 있을까? 몇 백 년 전에 살던 문인들이 아니라 손끝에 걸리는 작가들이었다. 처음으로 한국문학사에서 통증을 느꼈다.
 
김남천이「효석과 나」(『춘추』,1942.6.)라는 제목으로 창졸간에 잃은 서른여섯 살 친구를 기리며 남긴 산문도 있었다. 그 글에는 효석 선생이 부인과 막내아들을 잃고 연하여 당자도 쓰러지던 평양 시절 사연들이 곡절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추운 날 만수대의 집을 찾았다가 등교하는 장녀 나미를 뒷모습으로만 안타까이 바라보던 일이며, 난로도 꺼진 냉한 서재와 아이들을 위해 재혼하지 않겠다는 아비의 얘기를 전한다. 그리고 효석의 부고를 받고는 나이 어린 세 아이의 고독한 운명을 안타까워하며 글을 맺고 있다.

그 글을 읽은 밤 나는 몽골까지 따라와 곁에서 이불을 싸매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눈자위가 달았다. 이상스레 그 글이 잊히지 않고 늘 아비라는 자리로 집에 들어설 때 옷소매를 당겼다. 그 어렸던 세 아이의 안부가 때때로 궁금하였다. 수상자가 결정되고 큰아드님인 이우현 선생과 짧은 통화를 했다. 곧 뵙자고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문학을 두고 분위기가 뒤숭숭한 때라 마음이 무겁고, 이런 얘기들을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이 상을 그런 통증의 시간들을 가진 문단 선후배들과 앉아, 가족들의 조촐한 잔치처럼 받고 싶다.

심사평
2015년 제16회 이효석 문학상 심사를 위해 오정희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이순원, 임철우, 정홍수, 신수정, 백지연, 이수형 심사위원은 7월 7일 1차 심사(예심)에서 김채원, 이승우, 서성란, 전성태, 이장욱, 김성중, 박솔뫼 작가의 최근 작품을 2차 심사(본심)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이니만큼 모든 심사대상들이 저마다의 장점을 갖고 있었으나, 8월 3일 진행된 본심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김채원, 이승우, 전성태, 이장욱의 작품이었다.

서성란의 <침대 없는 여자>는 우리 시대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성중의 <국경시장>은 인간 실존에 관한 보편적 주제를 참신한 상상력을 통해 갱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솔뫼의 <도시의 시간>은 80년대생 세대 특유의 도시적 성장담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한 주목의 대상이었음을 밝힌다.

문학사의 일부가 된 세대에 속하는 작가가 현대적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채원의 <쪽배의 노래>에 심사위원 전원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쪽배의 노래>는 오랜 시간을 경과해 나온 원로 작가의 신작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신작으로 읽히는 것이 합당하다.

이승우의 <신중한 사람>은 허튼 소리 없는 단단한 소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신뢰할 만한 소설가 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한국문학의 소중한 부분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전성태의 <두 번의 자화상>은 볼륨만큼이나 진지하고 성실한 작가의식을 증거하고 있는바, 개인과 사회가 만나는 지대를 치밀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은 삶의 아이러니를 간파하는 모더니스트로서의 면모를 십분 드러냄으로써 한국문학의 첨단이 어디에 도달했는지를 실감케 했다.

이미 높은 수준에 오른 작품들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는 것만큼 어려울 일도 없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심사에서는 만장일치로 전성태의 <두 번의 자화상>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 문학에 대해 뭔가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은, 늘 그렇듯이 경이의 대상이다.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 혹은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 중 어느 쪽도 외면하지 않으려는 문학적 태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전성태의 수상은 뜻깊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성태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며, 앞으로의 활동에도 많은 기대를 보낸다.

  • 장소
  • 봉평면 일원리 효석문화마을
  • 일시
  • 2015년 9월 5일 (토요일) 오후 5시
  • 시상
  • 상패와 상금 5,000만원





'역대이효석문학상 수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8회 수상작가 강영숙  (0) 2018.05.15
제17회 수상작가 조해진  (0) 2018.05.15
제15회 수상작가 황정은  (0) 2018.05.15
제14회 수상작가 윤성희  (0) 2018.05.15
제13회 수상작가 김중혁  (0) 2018.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