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이효석문학상 수상자

제18회 수상작가 강영숙

메밀꽃 필 무렵 2018. 5. 15. 16:03

 제18회 이효석 문학상(2017년)



수상작


강영숙(姜英淑) 「어른의 맛」

                                                                          

작가 약력

1967년 강원도 춘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98서울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팔월의 식사가 당선되며 등단.

소설집 흔들리다』『날마다 축제』『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아령 하는 밤』『회색문헌, 장편소설 리나』『라이팅 클럽』『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등 출간.

39회 한국일보문학상(2006), 5회 김유정문학상(2011), 4회 백신애문학상(2011) 수상.



상금
3,000만원

운영위원회
위원장  오정희(이효석문학재단 이사, 소설가)
위 원  김주영(매일경제 문화부 부장)
위 원  이영춘(재단 이사, 시인)
위 원  이우현(재단 상임이사, 可山 李孝石의 장남)
위 원  조기양(재단 이사, 언론인)

심사위원회
위원장 : 오정희(소설가)
위 원 : 구효서(소설가, 제6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자)
            신수정(문학평론가)
            전성태(소설가, 제16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자)
            정홍수(문학평론가)

심사후보작 : (작가명 가나다 순)

강영숙  어른의 맛」, 《문학동네2016년 가을호
기준영  조이」, 《창작과 비평2016년 가을호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문학과 사회2017년 봄
박민정  「당신의 나라에서」, 21세기문학2017년 봄호
손홍규  「눈동자 노동자」, 《현대문학2017년 2월호
조경란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21세기문학2016년 겨울호
표명희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국문학2016년 가을





수상소감


좀처럼 극복되지 않는 불안과 공포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어떤 집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에 대한 집착, 사람에 대한 집착, 풍경에 대한 집착, 이론에 대한 집착 등 여러 차원의 감각적, 인식적 차원의 쏠림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집착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지나도 집착의 근원을 모르겠고 집착하면 할수록 불안하고 나중엔 공포가 생기고 공포가 점점 가중되어 해소되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집착이 계속되는 동안은 몹시 불안하고 그 불안이 가중되면 내면을 짓누르고 결국 또 뭔가를 쓰게 된다. 쓴다는 것은 결국 집착하는 어떤 장면을 향한 돌진이고, 의미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충실한 표현 행위이며, 결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에서 도망치는 훈련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어리지 않은 한 성인 여자가 자신의 입속으로 흙을 욱여넣는 장면을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다. 이 소설은 흙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시작해 미세먼지와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의 신념과 의지 그리고 내면의 확신이 무너지고 흩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가 흙을 입 속에 넣는 장면은 오래전에 한번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아이가 입 속에 뭔가를 넣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감각이, 성인이 흙을 입에 넣는 순간에는 있지 않을까 오래전부터 생각했고 곱씹었고, 그래서 사실 흙을 먹어보기까지 했다. 검은색 흙을 먹을까, 갈색 흙을 먹을까에서부터, 화단의 흙을 먹을까 놀이터의 흙을 먹을까, 한번에 먹을까 여러 차례 나누어 먹을까, 집착과 불안 그리고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행동을 하면서 마치 계산된 것처럼, 의도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공포 안으로 깊숙이 다가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 여전히 극복되지 않는 어떤 것들 때문에 두렵고 그런데도 여전히 쓰게 된다는 것 말고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우회로가 없어 보이는, 생의 중반에 다다른 한 인물이 입속에 흙을 넣고 목이 막혀 하는 장면을 써버리고는 그냥 하나의 집착을 덜어냈다고 조금은 안도하고 즐거워 한 정도였다. 원고 마감일을 넘긴 원고를 잡지사로 보내고 길거리로 나온 이효석 선생의 소설 주인공 준보처럼, 조용하고 괴괴한 밤의 와중에 우주의 운행을 의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세상을 그리겠다고 다짐하는 준보처럼 어떤 빛을 본 묘한 기분이 든다. 이 빛에 이끌려 오래도록 성실하게 쓰고 싶다.


심사평


2017년 제18회 이효석문학상 심사를 위해 오정희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구효서, 정홍수, 신수정, 전성태 심사위원은 7121차 심사(예심)에서 강영숙, 기준영, 김금희, 박민정, 손홍규, 조경란, 표명희의 소설을 본심 후보작으로 선정하였다. 심사위원회는 8112차 심사(본심)을 진행하여 강영숙의 어른의 맛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본심은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자기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들의 수준작뿐 아니라 신예들의 문제작도 포함되어 열띤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다. 새로운 미감으로 더욱 분화하고 있는 한국문학의 현장을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본심에서는 수상작과 함께 김금희, 기준영, 조경란의 작품이 깊게 논의되었다.


박민정의 당신의 나라에서가 보여주는 세대감각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현대사의 여러 국면을 성찰적으로 재구성해내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 소설 역시 당대적 윤리의식을 앞세운 사회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1991년 레닌그라드로 소급되는 당신의 나라에서는 학대, 성폭력의 깊은 상처를 소환하여 약자의 윤리감각으로 우리사회의 폭력성과 무감각을 대면시킨다. 손홍규의 눈동자 노동자역시 한 젊은이의 죽음을 계기로 애도와 죄의식에 휘말린 인물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고뇌가 느껴진다. 통증을 감각하고 앓는 인물, 그리고 그를 포위한 농촌의 가난한 가족 이야기가 실감 있게 포개져 묘한 색채의 소설이 되었다. 표명희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은 앙코르와트 여행담을 외형으로 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셈속 밝은 현지 가이드를 통해 자신의 허위의식을 깨닫는 서사가 인물이 제 인생을 간파하는 성찰로 자연스럽게 도약하는데 이 정직한 글쓰기의 힘은 은근히 강했다.


강영숙의 어른의 맛은 사십대 중년이 겪는 심리적 성장통이라 할 수 있다. 불안과 피로, 권태가 상존하는 비루한 현실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인물이 생의 누추를 추슬러낼 때는 울림이 컸다. 김금희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근래 김금희 소설의 광휘가 그대로 담긴 작품이다. 젊은 인물들의 꿈과 일상이 마모되어가는 상실감이 매우 쓸쓸할 뿐 아니라 이 특유의 정서가 직관적이고 리드미컬한 문장에 실려 위무하는 힘을 생성하고 있다. 기준영의 조이는 부모의 이혼으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자매가 크리스마스 전야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로 정교한 구도에서 번져오는 희미한 온기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어린 시절 두 자매가 눈 내리는 밤길을 뛰며 !” 하고 외치는 영화적 장면은 자매의 인생에 드리운 고난, 고통, 상처를 마법처럼 잘라내는 느낌을 주며, 작가의 장기를 요약해 보여준다. 조경란의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는 문체가 압도하는 소설이다. 핏줄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가족을 물린 자리에 남들과 맺어지는 새로운 가족 이야기를 앉히면서 풍부한 암시와 상징을 동원하고 있다. 소설의 인물들을 타자로서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자의식 강한 문장들도 눈여겨보게 하였다.


예심에서는 작품의 장점이 주로 논의되었다면 본심에서는 단점이나 약점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얘기를 나눌수록 장점이 더욱 부각되는 작품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강영숙의 소설이었고, 심사위원들은 이견 없이 어른의 맛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어른의 맛의 장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기 경험의 세계가 순금같이 구현된 소설이다. 강영숙은 작은 디테일을 무심한 듯 분산해 배치하며 실감과 자연스러움이 살아 있는 이야기를 짓고 거기에서 삶의 비의를 밝히려고 한다. 이 비관적인 세계를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다른 세대는 하기 힘든 두툼한 이야기를 써낸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우수작품상에 모시게 된 여섯 분의 작가분들께, 그리고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여러 독자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 장소: 평창군 이효석문학관
  • 일시: 2017년 9월 9일(토요일) 오후 2시
  • 시상: 대상 - 상패와 상금 3,000만원, 우수작품상(6명) - 상장과 상금 20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