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것을 할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 는 것이 아니고 이것을 할 수 있, 는 것이다. 그러면 해야지. 그 있는 것을 해야지. 그 도리 밖에는 없다. 적어도 문학에서는 아무도 닥치라거나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하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여전히 “어떡하지, 싶으면서도 격려가 된다. 쓰는 것을 계속 하다보면 앞으로의 계획이 뭐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언제나 내 대답은 같다. 계속 쓰는 거. 가급적 오래, 그렇게 대답하고 싶다.”
심사평
이효석문학상이 올해로 15회를 맞는다. 특정한 작가를 기리며 제정된 문학상이 국내에 여럿 있지만, 특히 이효석문학상은 등단 15년 이내 작가의 작품들을 >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다. 최근엔 그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국 소설 문학의 품격과 전통은 물론이고, 그 변화의 추이를 예민하게 반영하고 젊은 문학에 애정 어린 격려와 지지를 보내준 이 상이 내내 건재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예년과 다름없이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예비 심사에서는 김형중, 백지연, 이수형, 차미령 등 네 명의 평론가가 2013년 6월부터 2014년 5월까지, 문예지 등을 통해 발표된 한 해 단편소설계의 수확을 긴 시간을 두고 검토하였다. 그 결과, 기준영의 ｢이상한 정열｣, 김사과의 ｢여름을 기원함｣, 최은미의 ｢백일동안｣,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황정은의 ｢누가｣, 조해진의 ｢문래｣, 박솔뫼의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천운영의 ｢러브 레플리카｣ (이상, 발표일자 순) 등 아홉 편이 본심에 오르게 되었다. 본심은 지난 8월 5일 서울의 이효석문학재단 사무실에서 개최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소설가 오정희와 소설가 구효서, 문학평론가 방민호가 네 명의 예심위원과 함께 아홉 편의 소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준영, 김사과, 황정은, 조해진, 박솔뫼, 천운영 제씨의 소설이 비교적 자주 거론되었다.
기준영의 ｢이상한 정열｣에는 세련되고 모던한 감각으로 의외의 순간을 포착하는 작가의 장기가 잘 드러나 있었으며, 조해진의 ｢문래｣는 자전소설이 가진 애틋한 깊이와 품을 작가 고유의 섬세한 필치로 확인해 주고 있었다. 한편, 박솔뫼의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은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실험적인 작풍으로 소화하는 작가의 개성이 역력했다. 이 소설들은 각 작가들의 작품 경향을 암시하는 동시에, 현재 젊은 소설의 다양한 지류를 독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짧지 않은 토론 끝에 본심에서 집중적인 논의 대상이 된 소설들은 김사과의 ｢여름을 기원함｣, 천운영의 ｢다른 얼굴｣, 황정은의 ｢누가｣였다. 김사과와 천운영의 소설은 각기 한국 소설사의 한 세대를 웅변하는 작가의 작품들답게 상이한 접근법과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두 소설에 대해서는 심사 위원 간의 의견 차이도 그만큼 예리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김사과의 ｢여름을 기원함｣에 내포된 도발적인 문제의식과 형식적인 과감성, 천운영의 ｢다른 얼굴｣에 용해된 시간의 깊이와 견고한 짜임새는 열렬한 지지와 완곡한 반대에 동시에 부딪치게 되었다. 수상작으로 호명되지는 못하였지만, 우리는 이 두 작가의 패기와 성숙이 또다른 방향에서 섬세한 응답을 받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황정은의 ｢누가｣는 명실상부한 올해의 수상작이다. ｢누가｣는 예심위원 전원이 추천한 소설이며, 본심의 모든 심사위원이 관심을 표명한 유일한 후보작이다. 작가 황정은이 발표한 최근 일련의 소설들은 예외 없이 읽는 이를 놀라게 하는 소설적 순간들을 품고 있다. 이 작가가 현재 정점을 향해 가는 도중이며, 작가의 작품들이 곧 현재 한국 소설의 한 정점에 근접해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층간소음이라는 이웃 간의 익숙한 분쟁을 가져온 올해의 수상작 ｢누가｣는 인간 삶에 도사리고 있는 유령적 순간을 날카롭게 묘파하는 황정은 소설의 압도적인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도시 하위계급의 삶의 풍경에 해박한 작가는 이번에는 그 계급 내부의 갈등으로 직핍하는 동시에, 개인적인 성소에 대한 희원이라는 인간 보편의 영역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그러한 면면들이 서정과 파격을 한 작품에 용해시킨 작가 특유의 스타일로 가시화된다는 점도 기억해두고 싶다.
이번 수상이 작가 황정은의 행보에 따뜻한 힘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후보작에 오른 다른 아홉 명의 작가들과 변함없이 성원해 주시는 독자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