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손홍규 편-2017년 제18회 '이효석문학상' 대상후보작 지상중계

메밀꽃 필 무렵 2017. 8. 3. 12:15


청년의 죽음 통해 '애도의 윤리'를 묻다


발굴 현장 동료의 사고사후 일상이 망가지는 남자이야기
                                                                         

 • 김슬기 기자입력 : 2017.08.02 17:10:12


◆ 이효석 문학상 / 본심 진출작 ⑤ 손홍규 '눈동자 노동자' ◆


애도의 윤리라는 게 있을까. 떠나 보낸 자를 그리워하는 것도, 자신의 잘못을 탄식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도 모두 남겨진 자의 몫이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보낸 이에게만 남은 생을 살 의지가 생기는 법이다. 손홍규가 이 소설에서 주목한 건 애도의 윤리다.


제18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손홍규의 '눈동자 노동자'(현대문학 2017년 2월호)는 일터의 동료를 사고로 인해 잃은 자의 애도 시간을 천천히 쫓아간다.
'그'가 한쪽 다리를 살짝 절며 걷는 윤호를 만난 건 유물 발굴 현장에서였다. 일당 4만5000원에 인부들은 호미와 괭이로 작업을 했다. 보통 7~8명이었고 대개 60~70대였다. 윤호는 보기 드문 젊은이였다.


윤호는 화창한 날 죽었다. 비녀를 발굴한 날이었다. 잃어버린 카메라를 찾던 윤호 위로 산더미처럼 파놓은 흙무더기가 무너져 내렸다. 그는 가까스로 흙더미에서 빠져나왔고 윤호는 나오지 못했다. 그가 흙더미 속에서 단단한 걸 찾을 때 그의 발목을 움켜쥐던 손이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몸이 굳었고, 발에 힘을 주고 빠져나왔다. 누구에게도 그 이야기는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 윤호의 장례가 끝난 뒤 윤호의 여동생이 편지를 보내왔다. 봉투에는 사진이 있었다. 자신의 호미나 괭이 사진, 발굴한 조선시대 백자나 창날 같은 것들.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그는 술로 시간을 보낸다. 다시 찾은 사고 현장에서 그는 깊게 파낸 텅 빈 방죽만 남아 있는 걸 발견한다. 엎드려 귀를 대고 주먹으로 땅바닥을 두드렸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울고 웃고 기뻐하며 슬퍼하며 간신히 쌓아온 삶의 이력이 창날이나 비녀와 같은 단단하고 작은 유물로 매장되어 있을 것 같았다. "운이 나빴던 거지. 달리 보면 억세게 운이 좋은 거야.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게." 사람들은 그렇게 위로했다.


스물다섯 살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그가 아니었지만 스물다섯 살 젊은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을 죽지도 않고 살아온 건 그였다. 이게 죄인지 아닌지 대답해줄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뇐다. "나는 너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귀갓길에서, 그리고 윤호의 집을 찾았을 때 그의 앞에는 황소가 나타나기도 한다. 마치 죽은 자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것처럼. 생생한 묘사로 가난한 이들의 삶을 비추는 이 소설은 몇 번이고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한없이 미안해하는 사람들은 대개 잘못한 게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거부하고 싶은 쓰라린 역설이다.

그러나 그 역설이 반드시 무력하지만은 않은 밑바닥 삶들의 이상한 활력, 끈끈함과 섞이면서 성숙한 소설적 구도를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손홍규는 1975년 전북 정읍 출생이며 2001년 작가 세계로 등단했다. 오영수문학상, 채만식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소설집 '사람의 신화' '톰은 톰과 잤다' '그 남자의 가출',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서울' 등이 있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