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조경란 편- 2017년 제18회 '이효석문학상' 대상후보작 지상중계

메밀꽃 필 무렵 2017. 8. 8. 11:25


가족이란 구원일까 통증일까
  소년원 출신 가사도우미가 들어오면서 변화해 가는 늙은 아버지와

  아들의 일상
                                                                        • 김슬기 기자 입력 : 2017.08.07 17:01:27


◆ 이효석 문학상 / 본심 진출작 ⑥ 조경란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표준 가족이란 신화는 해체된 지 오래다. 결혼과 출산, 양육이란 생애주기를 좇는 삶을 가족의 일상으로 규정하는 건 어떤 이들에겐 폭력일 수 있다. 조경란의 예리한 눈은 이 소설에서 타자로만 이루어진 새로운 가족의 원형을 제시한다. 애증과 갈등이 아닌 느슨한 유대로 만들어진….


제18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조경란의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21세기문학 2016년 겨울호)의 배경은 남자 둘이 사는 집이다.
서른일곱의 '나'는 아직 아버지와 산다. 구립도서관이 휴무라 나는 2주에 한 번 수요일에 여자들을 소개 받았다. 상대는 아버지와 둘이 산다는 이야기에 냉랭해지곤 했다. 아버지는 며느리를 원했고, 나는 아내를 원한 적이 없으니 무기력한 수요일은 기약 없이 반복됐다.


두부압축기, 소머리절단기, 골절기 따위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뇌물의 달인이었다. 심지어 단골 병원의 원장은 물론 원무과에도 돈봉투를 가져갔다. 나름의 철학도 있었다. "인수야, 와이로를 줄 때도 법칙 같은 게 있다. 첫 번째는 한번에 너무 많이 주지 않는 거다. 두 번째는 상대방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거다. 인수야, 이해하겄냐? 그걸 기억해라. 니가 원하는 여자를 만났을 때는 말이다."


경아는 우리집에 새로 온 열아홉 살의 가사도우미였다. 나하고도 너하고도 먼 친척이라고 아버지는 소개했다. 왼쪽 팔에 문신이 있는 경아는 키와 덩치가 몹시 컸다. 서울살이가 처음인 경아가 온 다음주 수요일에는 동네 구경을 시켜주러 나갔다. 늘 산책을 하던 교회의 베이비박스 앞도 지났다. 거길 지날 때면 그는 늘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는 남의 집에서 온 아이였다. 시장과 마트와 이동식 도서관을 알려주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경아는 말했다. "저 소년원에 있었단 소리 못 들으셨어요? 거기서 책 많이 읽었는데."


그렇게 공을 들이던 단골 병원에 경아가 입원을 했다. 갈비뼈 아래서 심한 통증을 느껴서 담석 제거 수술을 받게 된 것. 아버지는 그동안의 뇌물을 건넨 것에 보상 받은 듯 의기양양해진다.


병원 시체보관소 직원에까지 돈봉투를 건네던 아버지가 그 직원의 퇴사로 의기소침해진 계절에,

태풍이 찾아온다.

티비에서는 폭우로 집이 떠내려가고, 사람들이 실종되는 모습이 비친다. 사람들이 안전띠를 매고 헬기로 끌어올려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도 저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소설에는 서로 다른 집에서 온 사람들끼리 막 저녁을 먹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새로운 식구의 탄생이다. 조경란은 여전히 감각적인 문체로 당대의 풍경을 형상화했다. 느슨한 연대로 서로를 끌어안는 세 식구의 모습은 쓸쓸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전성태 소설가는 "남들로 만들어진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뿌리를 잃은 사람들이 사연이 아니라 '통증'으로부터 자기근원을 복원해내고, 그 힘으로 새로운 가족을 승인하는 드라마가 뻐근하다"고

평했다.


조경란은 1969년 서울 출생으로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일요일의 철학' 등이 있고,

장편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혀' '복어' 등이 있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