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기준영 편-2017년 제18회 '이효석문학상' 대상후보작 지상중계

메밀꽃 필 무렵 2017. 7. 24. 22:33


가슴저린 삶의 아이러니 포착하는 성숙한

 작가의
부모의 이혼으로 헤어진 뒤 7년 만에 해후한 자매의 사연, 동화 같은 이야기로 그려내

                                                                  • 김슬기 기자  입력 : 2017.07.23 17:01:03


◆ 이효석 문학상 / 본심 진출작 ② 기준영 '조이' ◆


                           [사진 제공 = 신나라] 

나와 타인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그 간격을 가늠하는 건 하물며 가족 사이에라도 쉽지 않다. 7년 만에 크리스마스를 한집에서 보내게 된 자매의 하룻밤을 다룬 기준영의 소설은 이 간격이 만들어내는 환희와 비애의 순간을 포착하는 절묘한 솜씨를 보여준다.


제18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기준영의 단편 '조이'(창비 2016년 가을호 발표)는 스무 살 윤재의 짧은 서울행을 좇는다. 부모의 이혼으로 윤재와 문정 자매는 떨어져 살게 됐다.
멀어진 7년 동안 자매 사이는 이따금 안부만 묻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2주 전 언니의 전화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크리스마스엔 뭐해? 서울엔 안 오니?" 윤재는 최선을 다해 언니와의 만남의 순간을 준비한다. 쌍둥이 조카의 선물로 장난감 기차와 털목도리를 고르고, 매표원으로 일하는 극장에는 3일의 휴가를 냈다. 어색하지 않을 대화 소재까지 궁리했다. 조카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순 있지만, 어렸을 적 추억을 화제 삼는 건 위험한 일이다.


언니의 집에 도착하자 조카들은 선물에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처음 보는 형부와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 문정의 시누이는 케이크를 손으로 집어먹으며 반말로 말을 이어갔다. 짐작할 수 있는 건, 어린 나이에 결혼한 자신의 언니가 고단한 육아를 하고 있으며, 드센 시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만 홀로 빛나는 깊은 밤이 된 뒤에야 자매는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못 보고 지냈던 시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얘기하고, 가장 씩씩한 표정을 서로에게 지어 보인다. 어색함이 스르르 녹아 사라진 그날 밤, 창밖엔 눈이 내렸다.


이튿날 윤재는 온통 새하얀 골목길을 산책한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어린 날의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깊은 겨울 밤, 손님으로 북적이던 집에서 몰래 빠져나온 자매가 눈 위를 뛰었던 기억. 눈을 맞으며 밤길을 달리다 엉뚱하게 문정이 '컷'이라고 외치자 세상의 시간이 마법에라도 걸린 듯 일시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자매는 서로를 보고 다시금 까르르 웃었다. 그렇게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윤재는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것이다.


윤정은 생각한다. "뛰고 멈추고 울고 웃다가 만나질 때가 되면 다시 만나겠지." 내일은 전혀 다른 날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아침이었다. 기준영은 이처럼 다시 오지 않을 에피파니(顯現·Epiphany)의 순간을 포착해낸다. 기쁨도 슬픔도, 헤어짐도 다시 만나는 일도 반복해서 찾아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심사위원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던 자매가 7년 만에 해후한 뒤 간만에 감행하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새벽 산책은 이 소설을 동화적 마법의 세계로 몰고 간다.


삶의 조이, 기쁨이란 그렇게 불현듯 차갑고도 정답게, 냉엄하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준영은 그 미묘하고 가슴 저린 삶의 아이러니를 포착해낼 줄 아는 성숙한 눈을 지녔다"고 작품을 읽어냈다. 기준영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2009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와일드 펀치', 소설집 '연애소설' '이상한 정열' 등을 펴냈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