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박민정 편-2017년 제18회 '이효석문학상' 대상 후보작 지상중계

메밀꽃 필 무렵 2017. 7. 31. 12:32

  윤리적 무감각을 일깨우며

새로운 서사를 견인하는 힘

부모와 자녀의 삶 교차시키는 정교한 세공 돋보여 
                                                                                                                                 

                                                                                                                                                                                                                 김김슬기 기자입력 : 2017.07.30 17:07:55


◆ 이효석 문학상 / 본심 진출작 ④ 박민정 '당신의 나라에서' ◆ 


                                             [사진 제공 = 이천희]


각각의 세대에게 역사의 중력은 다르게 작용한다. 누군가에겐 생을 걸고 투쟁한 가치가 누군가에겐 보잘 것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시대를 기록하려면 작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30대 작가로 탄탄한 소설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박민정은 이 소설을 통해 모범 답안을 보여준다.


제18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박민정의 '당신의 나라에서'(21세기문학 2017년 봄호)는 지금은 사라진 지명인 레닌그라드를 호출하는 소설이다.
레닌그라드 연극원에 유학을 다녀온 부모는 '망국'이란 단어를 자주 썼다. 그 망국의 도시에서 '나'는 5살부터 8살까지 살았다. 그 시절 큰엄마라고 불렀던 보모는 나를 라이너스라고 불렀다. 내니, 라이너스, 1991년, 레닌그라드. 그런 부모가 모르는 세계가 있었다.


'1991년 라이너스의 악몽'이란 사진 작업을 하던 때였다. 나는 우연히 한옥을 개조한 미술관에서 '내니의 사생활'이라는 사진전을 보게 된다. 보모로 일하며 몰래 찍은 사진이 사후 쓰레기장에서 발견돼 사진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오르게 된 작가의 전시였다. 그 무렵 예상못한 편지가 날아온다. 5살 무렵 딱 한번 마주쳤을 뿐인 큰엄마의 딸에게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대학 한국학과 유지나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편지에서 부모와 큰엄마에 관한 진실을 폭로한다.


그 날 이후 나에겐 악몽이 돌아왔다. 구소련에서 매일같이 꾼 악몽이. 검은 그림자가 뒤따라오라며 손짓하고, 나의 포니를 빼앗아 면도칼로 북북 찢는 꿈. 유령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됐다. 유 교수는 당시 가난한 고려인이었다. 고려인을 위한 한국어 신문의 특파원으로 남한 유학생들에게 호감을 갖고 접촉했지만, 유학생들은 처음 보는 소련의 동포들을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짓밟았다. 유지나는 부모의 동료 중 한 명에게 강간을 당했고, 부모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한국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그리고 부모는 뻔뻔하게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교수가 되고, 실세 정치인까지 된 동료를 티비로 보며 늘 저주를 퍼붓기만 한다. 범죄에 침묵했던 무기력한 부모의 모습은 여전히 반복될 뿐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 편지를 쓴다. "나는 라이너스의 악몽에서 깨어났고, 당신의 나라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평생 발표하지 않은 사진을 찍은 비비안 마이어의 삶, 영욕이 교차한 레닌그라드, 고려인들의 척박한 삶,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연극을 올리는 정치인과 같은 현실의 소재를 정교하게 픽션 속에 녹여내는 솜씨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가상의 역사를 지어내는 사관(史官)으로서 박민정은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은폐된 범죄를 통해 이 시대의 윤리성을 고발하는 생생한 목소리를 이 소설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전성태 소설가는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다'는 소설 속 문장처럼 그녀의

소설들은 문화적 윤리적 무감각에서 우리 사회를 깨워내고 있다.

미학적 감수성에서도 그렇고 글쓰기의 정치성에서도 박민정의 소설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견인하는 힘이 느껴진다"고 이 소설을 평했다.

박민정은 1985년 서울 출생으로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가 있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