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김금희 편-2017년 제18회 '이효석문학상' 대상후보작 지상중계

메밀꽃 필 무렵 2017. 7. 27. 21:55

      고단한 청춘들의 여름 한철을 만나다
망한 출판인과 스웨덴 소녀의 인연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21세기 청춘들의 초상                   

                                          

                                                                                              ● 김슬기 기자 입력 : 2017.07.26. 17:12:31


◆ 이효석 문학상 / 본심 진출작 ③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


김금희는 일상을 비추는 담담한 이야기 속에 번뜩이는 유머를 틈입시켜 균열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작가다. 이미 견고하게 짜인 세상에서 마치 숨쉴 틈을 발견하듯 김금희의 소설은 읽는 이에게 울고 웃으며 해방감을 만끽하게 해준다.


제18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김금희의 '오직 한사람의 차지'(문학과사회 2017년 봄호)는 망한 출판업자의 이야기다. 그리고 스웨덴에서 온 분홍색과 코발트블루 투톤으로 오로라처럼 머리를 염색한 낸내와의 기이한 인연에 관한 이야기.


망망대해의 북극성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독자들을 기다리며 3년을 버틴 출판사를 폐업한 '나'는 웹진을 편집하며 근근이 먹고산다.
시간강사인 아내와 함께 사는 그는 장인에게 빚이 있었다. 무려 닭갈비 6500마리를 팔아야 벌 수 있는 돈을 장인에게 빌려 그는 출판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존재론적 갈등이 찾아온다. 장인어른에게 '생활의 달인'에 함께 출연한 음식점 사장들의 자서전을 내보는 게 어떠냐는 부탁을 받은 것. "아뇨, 제 출판사에서는 그런 건 안 냅니다." "왜 안 되나? 곰 자서전도 내면서, 왜, 뭐…."


그에게 어느 날 책을 교환하고 싶다는 독자의 연락이 온다. 출간 기억도 가물가물한 '곰의 자서전'과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를 다룬 책인 '오직 한 사람의 차지'였다. '낸내'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를 만났더니 정작 요구한 건 환불이었다. 그는 자괴감이 든다. 폐업 신고까지 한 마당에 무슨 생각으로 스웨덴에서 온 한국말도 서툰 교환학생에게 사후 서비스까지 하게 되었나.


공교롭게도 그날 이후 그는 낸내를 홍대의 카페에서 종종 만났다. 낸내에게 스웨덴어 강습도 받았다. 사랑도 아니었고 속된 말로 바람이 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낸내를 만날 때마다 아슬아슬한 결혼 생활에서 도망가, 스산한 바람이 통하는 굴 속으로 탈출한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여름의 끝은 화재와 함께 왔다. 장인의 닭갈비집 냉동창고에 보관해둔 재고 서적들이 썩어버려 결국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대학 임용을 포기하고, 집을 팔아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 돈으로 장인에게 빚 일부를 갚고 돌아오던 길, 두 사람은 느릿느릿 곡예 운전을 하며 서울로 돌아온다.


'마치 동면을 지속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던 시절은 다 잊은 봄날의 곰들' 같은 이들의 여름 한철을 목격하고 나면 독자들은 이들 세대의 비애가 어디에서 오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소설 속에 묘사되는 지미 헨드릭스와 우드스톡 시대의 자유분방한 삶과, 오늘날 서울의 욕망이 거세된 삶을 사는 부부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그 서글픔은 한껏 배가된다. 그렇게 김금희는 21세기를 사는 고단한 청춘들의 초상을 킥킥거리게 만드는 유머와 리드미컬한 문장으로 완성해 냈다.


구효서 소설가는 "김금희는 요즘 무섭게, 얄밉도록 잘 쓴다. 속악(俗惡)해 보이는 듯한 삶의 풍경을 헤치고 건져 올리는 빛나는 응어리들"이라고 이 소설을 읽어냈다. 김금희는 1979년 부산 출생으로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현대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등을 수상했고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를 냈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