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강영숙 편- 2017년 제18회 '이효석문학상' 대상후보작 지상중계

메밀꽃 필 무렵 2017. 7. 20. 17:03

뒤늦게 온 '어른의 성장통'…삶의 비의 포착한 장인의 솜씨 이 시대의 가슴 아픈 사건들 담담히 그려낸 감각적인 소설 
                                                                                                • 김슬기 기자   입력 : 2017.07.19 17:54:53


◆ 이효석 문학상 / 본심 진출작 ① 강영숙 '어른의 맛' ◆

 

강영숙은 비루한 현실과 삶의 비의를 섬세한 언어로 빛 속으로 끄집어내는 작가다. 늘 그랬듯이 이 소설에도 어른들의 비밀스러운 사랑과 삶의 고단함이 녹아 있다. 제18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강 작가의 단편 '어른의 맛'(문학동네 2016년 가을호 발표)은 기혼 남녀의 만남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연다.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날을 정해 점심을 먹곤 했다.


작은 커피숍에 틀어박힐 때면 보험회사 직원처럼 클리어파일을 테이블에 올려뒀다.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날까 싶어서였다. 두 달에 한 번, 호연이 월차를 내면 둘은 외곽으로 나갔다. 전원의 풍경을 보려 떠난 이들을 기다리는 건 세제곱미터당 백 밀리그램이 넘는 미세먼지. 이들은 내내 실내에만 틀어박힐 때가 많았다.


승신과 호연이 친해진 건 둘 모두 어머니가 자살로 생을 끝냈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대학 동기로 자신이 먼저 프러포즈를 했던 첫사랑 호연과는 이렇게 무미건조한 만남을 이어갈 뿐이고, 기계처럼 무심해진 남편과는 일상을 견뎌낼 뿐인 삶. 그것이 승신의 삶이었다. 호연은 하릴없이 묻곤 했다. "만일 우리가 거기 나란히 누워 죽은 채 발견된다면 말이야,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그런 승신에게 난데없이 걸려온 전화는 짧고 기묘한 모험을 선사한다. 노동자로 일하는 남편과 함께 중동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온 수연의 전화였다. 학창 시절엔 승신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직접 목을 비틀어 닭을 잡아주던 용감한 친구 수연과 멀어진 건 조류독감 때문. 양계장집 딸 수연은 조류독감이 창궐한 뒤 학교를 오지 않았고, 그 마을을 떠났다.


수연의 집은 외딴 곳에 있었다. 수십 년 만에 만나서 초계국수를 삶아주고, 나중에 혼자가 되면 둘이서 함께 살자고 말하는 친구에게 그는 낯선 감정을 느꼈다. 너는 누구니라고 묻고 싶었다. 수연의 집 천장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악몽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드림캐처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집 앞 포장마차에선 술을 마치고 싸우는 소란이 벌어졌다. 승신은 삶이 그 애들을 더 비관적으로 만들 거란 사실을 떠올리게 됐다. 그것이 자신이 경험한 인생이었다. 어른의 삶에는 악몽을 피하기 위한 부적이 필요한 법이다.


텁텁한 떡볶이의 맛, 초계국수의 깔끔한 국물 맛이 묘사되는 소설은 감각적이다. 동시에 우리 시대가 통과한 여러 사건이 파편적으로 등장한다.


 조류독감과 IS, 미세먼지가 창궐하는 봄과 청소년들의 성폭력과 같은. 시대의 날것 그대로의 풍경이 묘사되는 이 '미세먼지 시대'의 사랑 이야기는 씁쓸하고도 비릿했다. 마치 어른의 맛이 그러하듯이.


심사위원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뒤늦게 찾아온 '어른'의 성장통을 도박판에서 모든 것을 잃은 자가 맛보는 '흙맛'으로 환치시키고 있는 강영숙의 감각이 놀랍도록 신선하고, 어찌할 수 없이 씁쓸하다"라고 평했다.


강영숙은 1967년 춘천생으로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팔월의 식사'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일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소설집으로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 '아령 하는 밤', 장편소설로 '리나' '라이팅 클럽'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 등을 냈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