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2021년 제22회 이효석문학상

메밀꽃 필 무렵 2021. 7. 23. 13:35

코로나·부동산·젠더개인의 삶 파고든 시대의 고통

 

인간관계·내면 깊은 성찰
여성서사도 여전히 강세

예심통과 단편소설 16편중
타인의 삶` 6편 압축
작가 20~70대까지 다양

대상 3000만원8월 발표
9월 평창서 시상식 개최   

                                                        서정원 기자

                                              입력 : 2021.07.22 17:04:48   수정 : 2021.07.22 21:40:58

 22회 이효석 문학상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문학은 더욱 호출된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공동체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독자는 존재와 세계에 대한 문학의 고민과 성찰을 들여다보며 그 실마리를 찾곤 한다.

한국문학의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들을 가리켜 온 이효석문학상이 올해 스물 두 번째 등댓불을 밝힌다.

한 해 동안 경이로운 성취를 보여준 수작들 중 최고의 소설을 비춘다. 이효석문학상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

추앙받는 가산(可山) 이효석 선생(1907~1942)을 기리기 위해 2000년 제정된 상이다. 가산의 도저한 저작 '메밀꽃 필 무렵' 뒤를 이을 한국문학의 보배들을 매년 배출해오고 있다. 22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선정을 위해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1차 독회를 했다. 오정희 소설가가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인 구효서 소설가와 윤대녕 소설가, 김동식 문학평론가, 정여울 문학평론가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작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간 온·오프라인 매체에 실린 중·단편소설 중 각 위원이 3~4편씩 추천해 예심작 16편을 추렸고, 이를 한 달간 숙독한 뒤 이날 토론을 거쳐 최종 후보 6편을 확정했다.

 

제22회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장인 오정희 소설가와 심사위원 구효서 소설가, 윤대녕 소설가, 김동식 문학평론가, 정여울 문학평론가(왼쪽부터).

보통 두 시간 안팎이었던 독회는 예상을 훌쩍 넘겨 세 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다수의 작품이 치열하게 경합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어느 하나 버리기 아까운 우리 문학 성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불꽃 튀는 격론이 오간 끝에 김경욱·김멜라·박솔뫼·은희경·이서수·최진영의 단편이 본심에 올랐다. 오정희 소설가는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면서도 정체성에 대한 탐구 또한 잊지 않은 작품들"이라며 "문학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문인들의 다채로움과 현장성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예심에선 다수 작품이 주거 문제와 코로나19 창궐 등 동시대 풍경을 담아낸 점이 눈에 띄었다. 오한기의 '팽 사부와 거북이 진진'은 전세 사기 피해자가 복수에 나서는 과정을 유쾌한 시선으로 그렸고,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는 재건축 열풍 속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임차인들이 주인공이다. 김사과의 '두 정원 이야기'에서도 욕망의 최정점에 고급 아파트가 있다. 윤대녕 소설가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며 거주가 삶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요즘 젊은 작가들 작품에서 관련한 문제의식이 자주 엿보인다"고 했다. 또 절반 이상 예심작에서 인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자가격리를 하는 등 코로나19 대유행 시기가 시간적 배경으로 제시됐다.

내면이나 관계를 파고들며 여전히 개인의 삶을 진득하게 응시한 작품들에도 시선이 집중됐다. 거대한 세상에서 고립된 개인이 겪는 고독감을 감각적으로 형상화 한 김채원의 '세상의 눈동자', 친밀한 사이에서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의 역설을 드러낸 문진영의 '미노리와 테츠', 인물들이 상실과 결핍에 시달리면서도 무의(無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박솔뫼의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등이다. 자신과 다르면서도 또 같은 아버지가 나오는 김경욱의 '타인의 삶', 억압받은 어머니 세대의 비극을 극복하려 하는 최진영의 '차고 뜨거운'은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에 천착했다.

 

물론 이런 구분은 명료하기보다는 모호한 것으로 어느 대목이 마음에 가닿느냐에 따라 독자 수만큼이나 많은 선이 그어질 수 있겠다. 인물과 배경 등에서 생명성이 강조된 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와 이신조의 '봄밤의 번개와 질소'가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기 힘든 대표적 사례다.

몇 년 새 한국문학의 주류적 경향으로 자리 잡은 '여성 강세'는 이번에도 현저했다. 예심 통과자 16명 중 13명이 여성 작가였고, 한정현의 '쿄코와 코지', 이미상의 '여자가 지하철 할 때' 등 작품의 절반 이상이 여성들 삶을 쓰거나 목소리를 들려주는 여성서사 소설이었다. 정여울 평론가는 여기에 "여성서사로 명명하는 순간 작품의 정체성이 고정될 위험이 있다""소설이 품고 있는 다양한 사건과 캐릭터, 담론들을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든 살이 넘은 노년 여성 최유정의 개인으로서의 삶을 총체적으로 묘사한 은희경의 '아가씨 유정도 하지'가 이런 맥락에서 논의됐다.

세대로 보면 30·40대인 1980년대생이 16명 중 11명으로 다수인 가운데 20대와 70대 작가도 예심을 통과해 노장청이 조화를 이뤘다. 올해 최연소 후보자인 '험악한 세상'의 구소현 소설가는 1993년생으로 지난해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 '요술궁전'으로 등단했다. 최고령 후보자인 김채원 소설가는 1946년생으로 1975년 현대문학에 '밤 인사'로 등단했다. 심사위원회는 등단 연도나 과거 경력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지금의 작품을 기준으로 심사했다. 최종심 진출작과 남겨진 작품 간 차이가 미소해 심사위원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지는 오늘부터 최종 후보 여섯 작품을 지상 중계한다. 2차 독회를 거쳐 대상작은 오는 8월 중순께 발표한다. 대상 상금은 3000만원이고, 최종심 진출작가 5인에겐 우수작품상과 200만원씩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9월 강원도 평창군에서 열린다. 시상식 전후로 매경출판에서 '22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출간한다.

  ■ 주최 매일경제신문사 / 이효석문학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