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① 김경욱 `타인의 삶`

메밀꽃 필 무렵 2021. 7. 23. 15:50

'줄자''샛길' 사이아버지와 아들이 만난다

최종심 진출작김경욱 `타인의 삶`

재단사 아버지와 소설가 아들
극도로 달랐던 둘의 삶
마지막엔 어느새 닮아있어

 

이향휘 기자

입력 : 2021.07.22 17:03:57   수정 : 2021.07.22 19:14:31

  22회 이효석 문학상

 

 

 

 

 

 

 

 

 

 

 

 

 

 

 

 

 

 

 

 

"형은, 네 형은?"

아버지가 귓속에 마지막으로 흘린 유언은 장남인 화자를 혼돈에 빠뜨린다. 가족 모르게 숨겨둔 형이 있었던가, 아니면 남동생과 나를 착각한 것인가.

 

양복장이였던 아버지는 "목에 걸치고 있던 줄자처럼 정확한 삶"을 산 분이었다. 흐트러진 신발 한 짝도 견디지 못하는 깐깐하고 꼿꼿한 인생. "샛길 하나 없이 곧기만 할" 줄 알았는데 엄청난 비밀이라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일까. 화자는 소설가답게 추리와 상상을 동원하며 아버지의 '샛길'을 추적해간다. 그러고 보니 40여 년 전 아홉 살 때 까까머리 중학생 형이 집으로 찾아왔다. 섬 출신으로 칠남매 맏이인 아버지 집에는 객식구가 끊이지 않았다. 일가 피붙이 비슷하게 소개됐던 그 형은 화자에게 담배를 가르쳐주고 가짜 이야기의 매력을 알게 해준다. 법관이 되라는 아버지의 기대를 꺾고 화자가 소설가가 되는 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나온다. 화자는 빈소를 유심히 바라본다. 이상한 사내가 나타나고, 그는 다음날에도 입관식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사내는 말 없이 사라질 뿐이다. 가족 누구도 그의 존재를, 실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가 진짜 배다른 형인지, 화자의 착각인지는 끝끝내 밝혀지지 않고 모호한 상태로 끝난다.

오히려 작가 김경욱(50)이 주목한 것은 그 형의 존재를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와 조우하는 것이다. 고지식한 아버지를 피해 문학이라는 '샛길'로 달아났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아버지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는 깨달음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양복장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내비친 적이 없었는데 한 평론가에게서 "1까지 줄자로 재서 쓴 듯한 소설"이라는 평가에 기겁하고, 임종 직전 난데없이 면도기를 찾은 아버지가 수염을 반만 깎자 나머지 절반도 깎기를 종용했던 아들이다. 어느새 아버지와 아들의 경계는 사라지고 아버지의 얼굴에서 아들, 즉 자신의 얼굴을 본다.

 

흥미로운 지점은 화자가 그 형이 배다른 형이기를, 아버지에게도 감춰둔 비밀이 있기를 바라는 점이다. 장남이라는 무게감을 덜고 싶었을까. 그보다 줄자로 반듯하게 재 오차가 없을 것 같은 아버지의 삶에도 여러 샛길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아들의 애정이 느껴진다. 우리의 삶도 반듯한 줄자와 구불구불한 샛길의 어느 중간에 있지 않을까. 정교하고 정갈한 문장으로 던지는 작가의 물음이 깊다. 김동식 문학평론가는 "재단사 아버지와 담배도 가르쳤던 형을 통해 소설의 기원을 묻는 소설로 읽혔다"고 말했다. 소설가 구효서는 "아버지와 나의 얘기기도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다. 아들인 나에게도 자로 잰 듯한 문장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보인다"고 평했다.

김경욱은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93'아웃사이더''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작엔 '소년은 늙지 않는다'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등이 있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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