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선택하는 사람들…그 배후자는 `예술`
`죽음`마저 예술로 활용해버린
젊은 예술가 고뇌의 선택…
삶과 예술은 양립할수 있을까
예술의 본질을 파헤친 수작
김유태 기자
입력 : 2020.08.03 16:34:38 수정 : 2020.08.04 12:35:37
◆ 제21회 이효석 문학상 / 최종심 진출작 ④ 신주희 `햄의 기원` ◆
고통의 체험에 능동적인 사람들이 있다. 저들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고통이 양산하는 불행 안에 자기 삶을 가둔다. 즐거워서가 아니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음, 그 불가피성만이 예술에 항구적 조건인지도 모른다. 신주희 `햄의 기원`은 예술의 불가피성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예술가 소설이다. 죽음마저 "작업의 한 가지 형식"으로 활용하는 예술가를 그렸다.
`나`의 대학동기 `햄`의 부음 소식으로 시작된다. 햄은 `나`의 대학동기 별칭이다. 그는 괴짜였고, 자신의 삶마저 가벼이 여기는 기인, 극단을 사유하는 예술가였다. 10년 넘게 기른 머리칼을 잘라 곰 인형의 배 속에 채운 뒤 "가족"으로 소개하거나, 사람 치아를 모아 짐승 뼈와 접합한 조형물을 만들었고, 심지어 부모의 `알몸`으로 실루엣 영상을 만들어 최우수 작품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햄은 극단의 선택에 나선다. `적마(赤馬)`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다. `나`는 쓴다. "마침내 그가 무엇이라고 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어딘가로부터 완전히 멀어졌음을 깨달았다." 그리스신화의 반인반마 케이론을 꿈꾸던 햄은 병실에서 죽기 전 `나`에게 질문을 남겨둔다. `예술이란 무엇으로 존재 가치를 유지하는가.`
몸을 "한 장의 추상화"처럼 사용한 햄을 뒤로하고, 화가 `나`는 넥타이를 매고 강남역 보험 판매원이 된다. 미술계 작가들에게 보험을 팔면서, 예술 아닌 생활을 선택한다. 삶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예술의 의미를 깨달아버린 후의 선택이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의미도 없는 그림을 죽도록 그려야 했다." 예술과 생활의 양립 불가능성 이면에서 햄은 전자를, `나`는 후자를 택했다.
햄과 `나` 사이엔 착란상태로 진입 중인 연출가 `화 씨`가 등장한다. 햄의 장례식에서 그녀는 "아무래도 눈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며 피카소의 큐비즘처럼 "보이는 것 외의 것이 동시에 보인다"고 호소한다. 온몸에 1000개의 눈을 가진 그리스신화 아르고스를 언급하며 화 씨는 질문한다. "혹시 이 상태가 예술의 본질과 관련 있는 건 아닐까요?" 화 씨의 물음은 죽은 햄의 유언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폐원(閉院)된 동물원`은 서두와 말미에서 수미쌍관을 이룬다. 겨우 존재하던 것처럼 보이던 동물들은 전부 철창 밖으로 나가버렸다. 마치 `나`에게 남겨진 예술혼, 결국 소멸할 운명에 놓일 인간을 의미하는 듯하다. 폐원 풍경을 다루는 첫 문단은 시적이다. 소설이 광기와 기행에 다소 기댄다는 점, 즉 소재 우선주의란 단점은 지적됐다.
오정희 소설가는 "예술로서 순교(殉敎)할 것인가, 삶으로써 지탱할 것인가. 항상 우리가 고민하는 `예술과 생활`의 문제를 잘 짚은 수작이다. 보들레르식의 야생성까지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방민호 평론가는 "예술의 경계선에 관한 질문을 깊이 담았고, 특히 상징적 장치와 수사적 측면에서 매력이 큰 작품이다. 예술의 정체에 관한 깊은 고민과 사유가 짙게 뭍어나는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 작가의 동명 소설집 제목과 겹쳐, 작가와 상의 후에 원제 `모서리의 탄생`을 `햄의 기원`으로 수정합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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