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해한 사랑의 선택…완전한 삶을 묻다
기괴한 선택 둘러싸인 세계
사랑과 현실에 관한 질문들
`달달한` 문장 속 깊은 사유
탁월한 비유 가득한 수작
김유태 기자
입력 : 2020.07.29 17:06:39 수정 : 2020.07.30 13:46:16
◆ 제21회 이효석 문학상 / 최종심 진출작 ① 김금희 `기괴의 탄생` ◆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이 결국 발화되는 순간이 있다. "선생님, 걔하고 잤어요?" 김금희 단편 `기괴의 탄생` 다섯 번째 장에 나오는 지도제자의 저 대화는 한 관계, 한 분위기, 한 시절의 종언으로 이어지고야 만다. 질문이 나오도록 이끈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을 읽어보면 곧 알게 된다. 이상한 말을 해버리는 이유는 결국 이상한 선택으로 둘러싸인 `기괴한` 세상 때문이란 것을.
기괴한 두 풍경 사이에 화자 `나`를 앉히고 소설은 출발한다. 먼저 첫 번째 풍경. 작곡과 교수 은파는 뒤틀린 치열이 인상적인 제자와의 불륜 끝에 연극원 교수와의 이상적인 결혼을 종결하고 홍제로 이사한다. 대리 욕망체였던 은사 가정이 파국을 맞자 분노한 제자 `나`는 정종 한 병을 들고 선생을 찾는다. 취한 `나`는 은사와 손님들 면전에서 위와 같은 말을 해버린다. 집에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정적이 흐른다.
불가해한 두 번째 풍경. `나`는 수십 년간의 뉴욕 체류를 마치고 귀국한 40대 후반 신입사원 리애와 가끔 산책을 나선다. 리애와의 동행은 자기고백적 시간이다. `나`는 스승 은파의 불가해한 선택을 털어놓으며 위로를 구한다. 그런데 자신에게 동조할 줄 알았던 리애는 은파 입장에 바짝 다가선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인 거잖아요." 알고 보니, 리애의 뉴욕 생활도 기괴하긴 마찬가지였다.
홍제의 은파와 뉴욕의 리애는 거울처럼 서로를 응시하다 마지막에 합쳐진다. 그때, 소설은 묻는다. `인간은 왜 이상한 선택을 할까.` 소설 곳곳에 사유의 장치가 숨겨져 있다. 완벽해보이는 모습, "만인이 만족할 수 있는" 각도는 45도, 그러니까 정면 아닌 측면이었다. 정면을 노출하는 순간, 그 표정은 불완전하지만, 소설에서 표현되듯이 그 불완전성만이 "절대의 순도를 지닌 감정의 일"임을 소설은 증명해낸다.
우리가 사랑할 때 주로 걷게 되는 길은 통속이었을까, 신파였을까. 소설은 또 질문한다. 인간 간 거리를 기저에 두고 소설은 완벽한 이별, 관계의 단절이란 주제도 담아낸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은 시종일관 진지하진 않다. 와사비, 정종과 약과, 토마토탕, 생강정과, 갈변된 샐러드 등 기괴한 풍미의 음식은 폭소를 자아내는 소설 속 은유다. 단, 김금희 문장의 `달달함`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나`의 회사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 `부러뜨리다`도 인상적이다. `나`의 팀장과 사수는 "현실과 이상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부러뜨릴 생각 해야지"라는 식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함을 `부러뜨리다`라고 표현한다. 부러뜨린다는 건 그들에겐 `완전성`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한 상태와 절연하는 것이어서 `불완정성`에 가깝다. 옹이와 마디를 남기는 게 삶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정여울 평론가는 "불가해한 선택으로써 완전성을 내파한 은파 옆에서 수족 같은 존재 `나`는 자매애에 가까운 감정으로 완전성이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완전성의 균열을 추동하는 선택의 불가해성을 담은 문제작"이라고, 방민호 평론가는 "영원한 과제인 사랑 문제를 다룬 작품, 인간의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지만 현실적인 선택을 해나갈 수밖에 없는 사랑과 현실에 관한 질문이 인상적인 소설"이라고 평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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