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③박상영'동경 너머 하와이'

메밀꽃 필 무렵 2020. 8. 6. 12:45

냉소와 미소 사이로 흔들리는 세개의 눈빛

 

도망치거나 추방되는 두 남자

그 사이에 선 젊은 ``의 실존

소수자 문학의 경지 이룬 수작

이상향을 향해가는 인간 탐색

 

김유태 기자

입력 : 2020.08.02 17:09:28

 

21회 이효석 문학상 / 최종심 진출작 박상영 `동경 너머 하와이`

계산되지 못하는 생()들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다. 탈루와 횡령으로 50억원을 추징당했으면서도 벤츠 S클래스를 신차로 뽑고 플라자호텔 아메리카노를 마신 뒤 5만원을 거스름돈 없이 내고 나오는 `아빠`와 피 묻은 알코올솜과 일회용 주사기가 널부러진, `보증금 이백``월세 이백`짜리 방에서 살다 강제추방 위기에 놓인 `애인 원모`, 저 둘을 바라보는 화자 ``의 생생한 서사가 시작된다.

 

상실돼가는 두 남자를 ``는 바라본다. 아빠와 원모, 두 측근 말이다. 말쑥한 외모에 은근한 교양을 뽐내는 아빠는 사실 최악의 가족 구성원이었다. 목돈만 생기면 장외주식, 부동산 경매, 땅 투기에 `몰빵`했고 결과는 항상 실패였다. 그런데도 `가오`를 중시했다. 실종됐던 아빠는 보험을 해약하라며 ``에게 전화를 건다. "주기로 한 돈이 있는데, 아무래도 미리 처리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향정신성 약물에 중독돼 생을 망친 ``의 애인 원모도 실종된 상태다. 자살, 도피, 감금을 의심하지만 며칠 만에 걸려온 전화에서 원모는 여권을 부쳐 달라며 강제추방 위기임을 실토한다. 빚쟁이를 피해 도망다니는 아빠는 ``에게 원래 최악인 사람이었다지만 약쟁이가 돼 추방 위기인 원모는 ``의 곁에서 점점 최악이 돼가는 사람이다. 왜 세상은 최악이거나 최악이 돼가는 장면뿐인가.

 

완벽하게 망한 두 남자에게도 꿈은 있었다. 고모는 말한다. 아빠는 호텔 경영이란 부푼 꿈을 안고 동경에 갔지만 결국 `찐빠(파친코)`에 미쳐 소득 없이 귀국했다고. 원모는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하와이로 이민갔지만 뭘 하고 싶은지 아직 모른다. `어쩌다가` 자식을 낳은 아빠와 `어쩌다가` 그 자식을 사랑하게 된 애인. 동경 너머 하와이행을 꿈꾸는 ``의 바람만큼은 `어쩌다가`는 아니겠다.

 

툭툭 내뱉는 것처럼 쉽게 읽히면서도 결국 어떤 현을 건드리고야 마는 박상영표 특유의 문장도 반갑다. 냉소와 미소가 동시에 흐르는 표정에는 번민과 불안이 내재돼 있어서다. 이런 문장들이 그렇다. "나는 왜 원모를 좋아하지. (중략) 인생이 커다란 구멍 같아서. 모두가 나를 스쳐지나가버리고 온갖 더럽고 쓸모없는 것들이 껴 있지만 결국에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수챗구멍 같아서."

 

소설은 내내 박상영 작가 자신과 화자 ``를 동일시하듯 읽힌다. 둘 간 `적정한 거리`에 관한 고민이 치열했음을 보여주는 문장이 더러 눈에 띈다. 자전소설에 관한 근래의 사회적 논란 속에서도 그 이상의 지평을 이룩하며 한 걸음 더 내디뎠다는 심사위원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다만 원모의 불분명한 지향점이 단점으로 지적됐고 조금은 쉽게 쓰인 듯한 퀴어 서사라는 평가도 없지 않았다.

 

강영숙 소설가는 "박상영에겐 이상향의 존재가 꼭 있다. 원모처럼, 겉으로 보기엔 망치는 삶을 살아내는 것 같지만 그 존재는 ``의 삶을 정화한다. 사람에의 기대라는 의외의 요소에 주목하며 읽었다", 윤대녕 소설가는 "퀴어 서사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이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서버린 수작, 그간 하나의 양식이던 소수자 문학의 하나의 최종점에 다다른 작품"이라고 평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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