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떠나간 자리…늘 슬픈 냄새가 났다
후암동 적산가옥 배경으로
`유년의 슬픔` 돌아보는 작품
불우한 기억, 왜 여성 몫일까
탄탄한 취재와 집필 돋보여
김유태 기자 입력 : 2020.07.30 17:05:36
수정 : 2020.07.30 17:08:04
◆제21회 이효석문학상/최종심진출작 ②박민정` 신세이다이가옥`◆
기억의 내부를 채우는 질료는 다름 아닌 냄새다. `그 냄새`는 `그때`의 `그곳`으로 우리를 재위치시킨다. 냄새는 시간도 공간도 거스르는 기억의 본질이다. 박민정 `신세이다이 가옥`은 유년 시절 후암동 적산가옥, 저 오래된 옛집 쇠그릇에서 나던 비리한 냄새로, 유년의 슬픔을 되짚는 아픈 이야기다.
입양, 여성, 흔적, 소외, 거주라는 다채로운 지층으로 삶의 정면을 들여다본다. 프랑스 입양아 `야엘 나임`의 귀국 소식부터 들린다. 한국명은 강장희, 화자 `나`의 사촌이다. 장희와 동생 장선은 막내 장훈과 달리 국외 입양됐다. 누나들과 달리 장훈이 한국에 남겨진 이유는 그가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삼남매 아버지인 `나`의 큰아버지는 무력했고 입양은 할머니 지시였다. `나`는 삼남매와 할머니, 부모님과 함께 산 적산가옥을 쇠그릇의 쇠냄새로 기억한다.
마당까지 딸린 이층 독채에는 능소화가 가득 폈다. 광복 전에 지어져 한때 일본인 소유였던 그곳은 신세이다이, 미요시와, 쓰루가오카 가옥으로도 불리던 곳이다. 어린 `나`에게 "지긋지긋한 옛집"인 적산가옥은, 근현대 가정에서 여성들이 계속 `버려지는` 장소였다. 두 사촌 언니는 이국으로 사라졌고, 미혼모 고모는 구박받았으며, 고모 딸 수진이 멸시를 견딘 처소였다.
문제는 여성을 배제시키는 주체가 남편이 없는데도 가부장제를 삶의 규칙으로 떠받든 할머니였다는 점이다. 장희, 장선, 고모, 수진, `나`는 조모에게 차이 없는 `계집`일 뿐이었다. 할머니는 "애 버르장머리" 운운하며 어린 손녀 `나`의 따귀를 때리고, 아빠 없이 태어난 손녀 수진에게 "독한 년"이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쇠냄새는, 할머니가 만든 `그 시절 딸들`의 불우함을 상징할 약호가 된다.
야엘은 왜 돌아왔을까. 그녀는 가해자인 부모와 조모에는 무관심하고 동생 장훈을 보고자 한국을 찾았다. 간접적 가해자인 `나`의 아버지는 "자꾸 머리가 아프다"며 조카 야엘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3세대에 걸친 후암동 집의 여성 서사는 한국 사회 가부장제가 배태한 슬픈 여성사의 압축판인 셈이다. `나`는 관찰자, 당사자의 시선을 유지하면서 시대적 슬픔을 르포처럼 기술한다.
해방촌 적산가옥에 관한 작가의 취재력은 심사위원 다수에게 호평을 받았다. `서울의 역사`로서 장소적 탐구가 소설 지평을 확장했다는 이유에서다.
1970년대 강남과 동부이촌동 개발로 집값이 `똥값`이 된 후암동, 고덕동 아파트 일대 재건축 풍경 등 서울 주거지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기술도 단단한 이해에 기반한다고 평가받았다. 단, 공부해서 쓴 티가 묻어난다는 작은 흠도 지적됐다.
윤대녕 소설가는 "어둑한 가옥을 배경으로 한국 사회 속 우리가 지나온 연대기에서 여러 여성 세대가 겪은 문제, 나아가 한 가족의 이산(離散)에 관한 꼼꼼한 이해와 집필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강영숙 소설가는 "과거를 정리하는 현재의 이야기로,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소설이다. 공간의 역사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려는 시도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고 평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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