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이효석문학상 수상자

제8회 수상작가 박민규

메밀꽃 필 무렵 2018. 5. 15. 13:16

제8회 이효석 문학상(2007년)




수상작
‘누런강 배 한척’

작가 약력
박민규
1968년生.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후 소설집 <카스테라>, <더블> 장편소설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펴냈으며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상금
2,000만원

운영위원회

심사위원회
김주영(소설가), 서영은(소설가), 김인환(소설가), 이순원(소설가), 서경석(문학평론가), 김경수(문학평론가), 신수정(문학평론가)

심사후보작 : (작가명 가나다 순)
- 김애란 「침이 고인다」
- 김연수 「모두에게 복된 새해」
- 이현수 「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들이지 마라」
- 전성태 「목란식당」
- 천운영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 편혜영 「분실물」
- 황정은 「모자」
- 박민규 「누런강 배 한척」

수상소감
단편은 대개 누군가가 주는 선물로 쓰여진다. <누런 강 배 한 척>은 나의 아버지, 박동훈(朴東勳) 씨를 위해 쓴 소설이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사년 전 어느 날 문득 고인이 되셨다.

1933년에 태어나셨고 고향은 함경남도 이원이었다. 대부분의 아들들이 그러하듯, 긴가민가 아버지가 향년 몇 세인지도 모른 채 나는 장례를 마쳤다.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기보다는, 삶이 죽음보다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평소의 느낌 때문이었다. 그런대로 괜찮은 기분이었다.

시시하기도 하고 무던하기도 한 삶이었다. 별, 쓸모도 없는 자식을 셋이나 두셨는데 죽이거나 팔아치우지도 않고 끝까지 기르셨다(나 같은 걸 말이다, 나라면……). 삼십 년 내내 한 직장을 다니셨고, 정년퇴직을 하셨으며, 부도를 맞아 힘든 노년을 보내셨다…라고는 해도, 생각해 보니 아버지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남남처럼, 그랬다.

어떤 인간이었을까?

아버지의 과거를 궁금하게 여긴 것은 오히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였다. 더없이 놀란 사실은, 나의 아버지가 ― 내가 아는 아버지와 전혀 다른 인물이란 것이었다. 늘어진 어깨로 출근을 하고, 유약하고, 지독히도 보수적이고, 답답하기 그지없던 그 아버지는 과연 누구였을까? 아버지의 삶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추억 속에서 아버지는 최고의 <댄디>였다. 그럴 리가 싶었지만 더없이 많은 사진과 증언들이 그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아버지는 최고의 가수였고, 화가였으며, 시가(詩歌)와 풍류를 즐기는 예인(藝人)이자, 의협이었다.

도대체 이런 멋진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여자들 사이의 인기도 나보다 백배는 많은 인물이었다. 이런 화끈하고 걸출한 댄디가 고작 나 따위를 기르느라 찍소리 없이 직장을 다녔다니, 인류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한 낭비이자 퇴화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럴, 수가.

그런 이유로, 말하자면 이 <댄디 박>을 위해, 나는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 나 따위를 위해 주저 없이 댄디의 길을 접은 한 인간을 위해, 어떤 위로도 보상도 받지 못한 아버지란 생물을 위해서였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었다. 빨대를 꽂고 수십년 아버지의 삶을 빨아먹고선 이제 와 고작 한 편의 소설을 건네주다니. 법을 모르긴 해도 이 정도면 형사 입건의 대상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소설을 썼다. 1933년 생을 위한 소설이었다. 처음엔 <아빠 앞에서 실러캔스>란 소설을 구상했는데 이게 아니다, 싶었다. 도통…뭔 소린지. 울컥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버지가 읽고 옳거니, 느낄 수 있는 소설을 써야만 했다. 써보지 뭐. 사용하던 매킨토시를 끄고 먼지가 쌓인 도스 컴퓨터를 꺼내 켠 심정이었다. 도스엔 물론 도스의 매력이 있었다.

<누런 강, 배 한 척>이란 제목을 처음 눌러 쓴 후,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어디선가 <전원일기>의 주제가 같은 것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좋구면. 등 뒤에서 파, 최불암 씨가 웃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아 하면서도 나는 끝끝내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건 빈티지야! 자위하기도 하면서, 아니 무엇보다 ― 아버지의 수십 년 삶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불쌍한 아버지가 알고 있는 <소설>이란 모쪼록 이런 것이겠지. 평소의 나를 떠올린다면 그야말로 <할 만큼 한>것이었다.

할 만큼 했다.

라고 세상의 자식들이, 또 부모들이 생각하는 이유는 실은 서로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운명의 아버지가, 그런 운명의 나 자신이 긍휼히 여겨졌지만 소설을 쓰면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짜증이 났다. 다시는 다음 세상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마음이었다.

미안해서
미안하니까

그리고 까마득히 이 작품을 잊고 있었다. 마치 죽은 아버지를 잊어버리듯, 그랬다. 덜컥,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서는 그래서 아, 아버지가 있었지…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구.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상이란 걸 받을 때의 이런 기분이 나는 싫다. 왠지 잘 익었군…고개 숙인 벼라도 되어야 할 것 같은 이런 기분이…나는 싫다. 자네도 꽤나 상을 탔더군? 강을 건너가 이효석 선생을 만난다면 왠지 놀림을 받을 거란 생각도 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하여간에 나는 그런 인간이다. 고개 숙이지 않고 익어가겠다.

감사하다고도 말하지 않겠다. 감사할 곳이 많은 인간은 결코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는 평소의 지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느껴지는 <마음>이 있다. 뭐랄까, 지천에 메밀꽃은 피어 있고, 노새를 타고 고개를 넘다 “생원도 제천으로?”와 같은 말을 건네 들은 기분이다.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었구나, 실은 모두가 아버지였구나…말없이, 더 열심히 쓰겠다. 언젠가 저 강을 건넌다면 아버지와도, 혹은 이효석 선생과도 그런 식으로 해후하게 될 것이다. 수상의 영광은 전적으로 그들의 몫이다. 나야 뭐, 아직 한참 멀었으니까…길은 멀지만,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밥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리는 기분이다. 역시나 달도 어지간히 기울어져 있겠지. 외롭고, 외롭지 않은 밤이다.

브라보, 댄디 박!

심사평
예심을 거쳐 우리에게 넘어온 여덟 편의 수준이 한결같아서 그 가운데 어느 한 편을 선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덟 편의 소설은 오늘의 문단 사정을 반영한 듯 현실파 소설과 미학파 소설이 반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우리는 역사와 현실의 세부를 묘사하는 주류소설의 복권을 감지하였다. 그러나 서정과 환상과 분위기의 묘사에 주력하는 소설들에서도 강한 밀도의 리얼리티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술방법을 실험하는 이인성 계보의 소설이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문단의 동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효석 소설의 계보에 든다고 할 수 있는 서정소설과 환상소설들부터 논의해 보기로 했다.

황정은의 「모자」는 신선한 환상을 잘 살린 소설이다. 사람이 벌레가 되는 이야기는 있었으나 사람이 모자가 되는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모자라고 부르는 담담한 문체가 돋보였다. 그러나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아버지의 형편이 변신의 이유로서 좀 더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김연수의 「모두에게 복된 새해」는 외국인 노동자의 서투른 한국어를 작은 계기로 사용하여 소통의 결여가 야기하는 고통을 말하고 인간에 내재하는 근원적 고독에 대하여 무엇인가 절실한 것을 전달하는 소설이다. 아내의 고독이 외국인의 입으로 표현된다는 상황은 이민 간 딸을 기다리다 죽어가는 노인의 상황과 대비된다. 노인과 아내와 외국인 노동자를 묶어주는 피아노도 절묘한 소도구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서정소설이지만 이야기가 제풀로 풀려나가기보다는 짜 맞춘 흔적이 보인다는 점에서 김연수의 소설로서는 평년작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천운영의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는 주제가 너무나 분명한 소설이다. 그녀의 다른 소설들과 같이 이 소설에도 사진사라는 직업의 세부가 구체적으로 다루어 져 있다. 여행사를 하는 아내의 젊음과 아내의 주선에 따라 일본인 관광객의 누드 사진을 찍는 그의 늙음이 대조되고, 더 나아가 아내의 장식적 젊음과 소년 J의 진정한 젊음이 대조된다. 그와 소년이 치고받는 장면은 거지와 싸우는 보들레르 산문시의 한 장면처럼 재미있다. 진정한 젊음은 늙은이를 차별하는 젊음이 아니라 늙은이나 젊은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자기 신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생명의 활력이라는 이 소설의 주제는 분명하게 전달된다. 그런데 이 분명한 전달력이 오히려 문제라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대조가 분명한 것은 소재가 완전히 내면화되어 있지 않은 증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현수의 「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 들이지 마라」에 대해서도 천운영의 소설을 논의하던 과정이 그대로 반복되었다. 장애인 엄마와 장애인 딸을 버리고 나와 악착같이 살다 간, 한 노파의 일대기가 마치 무협소설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 것이 이 소설의 재미라면 자식을 버린 여자와 남의자식을 키우는 여자의 대조와 같은 것은 수법이 너무 분명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흠이 될 수도 있다는 평이 있었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서정적 주석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는 추구와 환멸이라는 프루스트의 주제가 시간의 미소한 흐름을 따라 들뜬 곳 하나 없이 표현되어 있는 소설이다. 심사위원 중의 한 분은 실제로 체험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소 단위의 시간의식을 드러나는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용기가 아마 이 작가를 문단의 중심에 서게 할 것이다. 모녀관계와 친구관계가 껌 한 통 정도의 가치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현실인식은 아마 지금까지 나온 어떤 현실비판보다도 예리하고 잔인한 것일 듯하다.

편혜영의 「분실물」은 회사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구성한 소설이다. 남보다 늦은 승진, 상사에게 승인받으려고 자진해서 계속하는 수당 없는 야근, 집에서도 편하지 않은 잠자리. 겨우 지시받은 일을 끝낸 날 저녁 지하철에서 잠깐 조는 사이에 누군가 들고 간 가방, 겨우 찾았으나 이미 어느 쓰레기통을 들어가 버린 서류. 어찌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하겠으나 그 사건을 주인공 박의 시각에 밀착하여 그려내는 필치는 예사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을 반영하는 초점자의 성격과 환경이 제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전성태의 「목란식당」은 몽골의 어느 북한계 식당을 현재 남한 사회의 축도로 설정하고 여러 인물군의 대립을 통하여 민족의식의 분열상을 제시한 소설이다. 북한을 싫어하는 사람과 북한을 이해하려는 사람의 대립은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약점을 잡고 북한계 식당을 등치는 건달 사기꾼도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일찍 북한에 갔다 와서 그들과의 작은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북한의 어느 화가가 그림을 못 그리게 됐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그림을 포기하고 몽골에서 그 화가의 소식을 탐문하고 그의 그림을 탐색하는 삼촌이 중립적 서술자의 눈으로 묘사되어 있다. 현재 가능한 민족의식의 공통인수를 찾아보고자 하는 작가의 시각은 침착하고 냉철하다.

박민규의 「누런 강 배 한 척」은 치매 걸린 아내와 성공하지 못한 자식들 사이에서 사는 어떤 퇴직자의 이야기이다. 안 준다고 결심하면서도 결국 자식들에게 집까지 팔아 다 내주고 부부가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난다. 그 마지막 날 죽으려고 수면제를 모아 두었다. 바로 그날 느닷없이 안마사가 찾아왔다. 예약을 취소한 손님이 불렀었다는 것이다. 안마를 받고 마지막 남은 맥주를 딴다. 작가는 그 후에 자살을 결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특별하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소설의 특별한 점이다. 사건을 이리저리 잡아당기지 않는 것이 이렇게 저렇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실성을 드러낸다.

김애란과 박민규 작품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두 작품 모두 수상작으로 손색이 없다는 심사위원의 공통된 의견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그동안의 작품 수준을 감안할 때 박민규의 작품이 기존 작품에서 한 단계 나아간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아 「누런 강 배 한 척」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작품을 기대하며,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김주영, 서영은, 김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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