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이효석 문학상(2006년)
- 수상작
- ‘풍경’
- 작가 약력
- 정지아
1965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 실천문학에서 장편 『빨치산의 딸』을 출간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96년 단편 「고욤나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소설집으로 『행복』이 있다. 2006년 제7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 상금
- 2,000만원
- 운영위원회
- 심사위원회
- 박완서(소설가), 김화영(문학평론가), 윤후명(소설가), 김경수(문학평론가), 서경석(문학평론가), 신수정(문학평론가), 이순원(소설가)
- 심사후보작 : (작가명 가나다 순)
- - 김경욱 「게임의 규칙」,
- 김도연 「꾸꾸루꾸꾸 빨로마」
- 김중혁 「악기들의 도서관」
- 박민규 「비치 보이스」
- 윤성희 「저 너머」
- 은희경 「유리가가린의 푸른 별」
- 정영문 「브라운 부인」
- 정지아 「풍경」
- 조선희 「김분녀의 일생」
- 한수영 「구리 연」
- 수상소감
- 맹수류는 시야가 좁다. 먹이를 사냥하고 추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보고 단숨에 달려들어 적의 숨통을 끊는 맹수와 같이, 내가 던져진 세상이라는 것의 숨통을 찾는 것이 문학의 소임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원대했으나 어리석었던, 비현실적이었으나 아름다웠던 청춘의 믿음이 사라진 자리에 불신이 자리한 것은 아니다. 서른 중반 이후에 나는 서툰 날갯짓을 배우기 시작했다. 조금씩 오르고 보니 시야는 넓어졌으나 그 무엇도 뚜렷하지 않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강인지, 그 어디로 사람들 흘러 다니는 길이 났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아예 깃털처럼 가벼워져 다시는 사람 사는 땅에 내려앉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더 오르는 일이 두려워진다.
나는 아마 더 올라야 하고, 돋보기를 쓰든 망원경을 들이대든 인간이든 길이든 똑똑히 보는 법도 배워야 할 것이다. 살수록 모르겠는 인간 혹은 삶이라는 괴물을 제대로 보는 법이라... 아직은 막막하다.
마흔 둘의 내 나이를 젊다고 해야 할지 먹을 만큼 먹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해두해 세월이 흘러가며 좋은 것은 길을 잃어도 예전처럼 세상이 끝난 듯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 길이 없으면 또 어떠랴. 예서 주저앉아 흘러가는 구름이나 발밑의 개미를 친구 삼아 시간과 희롱하면 그뿐이다. 그러다 지치면 사붓사붓 무성한 숲길 헤치며 새 길을 찾아 나아가볼 수도 있으리라... 하면서 실상은 제 자리에 선 채로 흘러가는 시간을 구경이나 하고 있다.
그것도 나름 재미있다. 이것은 마흔 둘, 꽃은 피고 새는 우짖고, 황사는 그치고 하늘은 맑고, 게다가 뜻밖의 수상소식까지 전해진 기분 좋은 봄날의 내 심경이다. 윗층 남자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치는, 게다가 황사냄새 가득한 봄밤이면 인생도 문학도 아득해진다. 문학의 위기라는 시대에, 자본의 썩은 냄새 진동하는 시대에 글을 쓴다는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지, 제 앞길 가늠조차 못해 비틀거리는 주제에 감히 무엇을 내 것입네 세상에 들이밀 수 있는 것인지, 민망하고 부끄럽다 못해 스스로의 뻔뻔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기어코는, 쓴다. 쓰고야 만다. 그것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까닭이다. 농부가 때가 되면 씨를 뿌리듯, 목수가 나무를 보면 연장을 꺼내들듯. 농부가 가을이 되면 적든 많든 곡식을 거두듯 쓰다보면 언젠가는 거둘 날이 있겠지 기대한다. 서툰 목수의 작품이라도 여염집 어느 공간에서 나름대로 제 자리를 차지하고 제 소임을 다하듯 내 소설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나마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 누군가가 큰 길에서 벗어난 작고 슬프고 아픈 영혼이라면 더욱 행복하리라.
어떤 종류든 상이란 영예이자 굴레이며 채찍질이라고 믿는다. 영예는 크게 기대한 적이 없으니 평생 글을 쓰고 살라는 굴레이자 더 높이 날아올라 더 정확하게 보라는 채찍질로 생각하겠다. 아직은 젊으니 그럴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헛된 믿음일지언정 그래야 한 발이나마 전진할 수 있을 터이니.
천성이 무뚝뚝하여 단 한 번도 부모님께 내 감정을 전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아직 맨 정신일 때, 죽음 같은 고통도 견뎌냈던 빨치산의 의지가 아직 남아 있을 때, 당신들을 부모님으로 만난 이번 생이 괴롭고 외롭기도 하였으나 실은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분에 넘치게 나를 사랑해준 많은 선생님들, 선배들, 친구들, 후배들, 제자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그분들의 다정함과 때로는 남보다 더 무서운 채찍질이 큰 힘이 되었다. 너무 의례적이라 식상하긴 하지만 부족한 작품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적어도 여기서 멈추지는 않겠다는 결심이 그분들의 노고에 대한 유일한 보답이리라.
- 심사평
- <화해와 포용, 그리고 승화 >
면밀한 예심을 거쳐 올라온 10편의 소설들은 한결같이 작품성이 뛰어났다. 우리 소설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상의 엄정한 예심이 새삼 돋보였다. 예심은, 어느 작품이 수상작이 되어도 무방하다는 선을 의식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후보작들이 하나하나 거론되다가 마지막으로 <풍경>과 <구리 연>이 떠올랐다. 다소 의외라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의 새로운 기운은 문학 본연의 자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었다. 군더더기 없이 의젓하고 수굿하게 구절구절을 이끌어간 <풍경>은 단순한 ‘풍경’에 머물지 않고 가슴 응어리를 풀어지게 하는 힘으로 승화되었고, 산뜻한 염결성으로 빛나는 <구리 연>은 기다려온 신예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또 다시 다른 작품들을 되짚어 살펴보기도 했으나, 결론은 역시 두 작품으로 모아졌고, 그리고 마침내 <풍경>이었다. 수사학적인 만장일치가 아니라, 아예 이견이 없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작품으로 각인된 작가가 드디어 이렇게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상쇄하며, 아니, 포용하며 웅숭깊은 세계를 지향해 갔구나, 함께 찬사를 보냈다. 어느덧 능청스럽도록 무르익은 솜씨 또한 일품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이 가야 할 진실에의 길, 화해와 승화의 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이 오갔다.
오랜 시간 불굴의 정신으로 소설의 등걸불을 지키며 외롭게 밤길을 걸어온 작가의 앞날에 더욱 영광 있기를 비는 마음이, 숙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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