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이효석문학상 수상자

제10회 수상작가 편혜영

메밀꽃 필 무렵 2018. 5. 15. 13:20

제10회 이효석 문학상(2009년)


수상작
‘토끼의 묘’
작가 약력
편혜영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슬 털기〉로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가 있다. 2007년 한국일보문학상, 2009년 제10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상금
2,000만원

운영위원회

심사위원회
한수산(소설가), 최수철,(소설가),이혜경(소설가), 김미현(문학평론가), 신수정(문학평론가), 김동식(문학평론가), 손정수(문학평론가)

심사후보작 : (작가명 가나다 순)
- 박성원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2」
- 윤성희 「웃는 동안」
- 이장욱 「고백의 제왕」
- 조경란 「기타부기 부기우기」
- 천운영 「남은 교육」
- 한유주 「장면의 단면」
- 편혜영 「토끼의 묘」

수상소감
<여행지에서 쓴 소설>
지난 겨울은 여행지에서 보냈다. 서울보다 해가 짧은 곳이었다. 가지고 간 책은 아끼며 읽는 중이었고 외국어로 방송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영 흥미를 느낄 수가 없어서 대체로 집 밖을 산책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서 조금 걸어 나가면 큰 전철역과 넓은 공원이 있었다. 공원에서 주민들은 산책로를 따라 달리기를 햇고, 주변 오피스타운에서 일을 끝낸 직장인들은 담배를 태우거나 한담을 나누다가 역으로 갔다. 조금 어두워지면 으슥한 곳을 찾아 아베크족이 모여들었다. 나는 공원에 앉아 여행지에서 처음 듣게 된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사위가 어두워지는 걸 지켜보다가 추워지면 숙소로 돌아왔다.

어느 날 공원 화단에 한 뼘 길이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나무를 뽑아 와서 먹고 난 요구르트 용기에 심었다. 며칠이 지나도 나무가 죽지 않는 것이 신기해서 역 근처 화원에서 몇 개의 작은 화분을 샀다. 식물을 키워본 적 없는 내가, 집에서도 키우지 않던 식물을 여행지에서 산 것은 순전히 그곳이 여행지인 때문이었다. 머무는 기간이 길지 않을 것이므로 불성실하게 돌봐주어도 나무가 죽을 리 없었다. 성급히 죽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잘 자라면 오히려 곁을 떠나기 아쉬울 거였다. 나무가 잘 자라건 맑던, 나는 곧 그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토끼의 묘>는 여행지에서 쓴 유일한 소설이다. 집을 떠나 소설을 써 본 적이 없어서 여행지에서 짐을 풀며 이곳에서는 분명 아무것도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잘 돌봐주지 않아 이내 나무의 잎이 마르고 화분의 흙이 마르는 걸 보면서 이 소설을 썼다. 여행지에서 나는 대체로 편안하여 무상(無想)하였으나 한편으로 낯선 것이 두렵고 두려워서 외로웠는데, 내가 마라 죽인 나무만큼이나 메마른 느낌이다. 만약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그 시절은 죽은 나무로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소설 덕분에, 한 시절이 지나가는 듯해도 그저 지나가는 것만이 아님을, 한 순간 머무는 듯해도 결코 머무는 것만이 아님을 알았다.

수상 소식을 듣고 소설을 쓰는 동안 회의와 불안을 거듭하느라 생겨난 깊은 자책이 영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 올해로 소설을 쓴 지 꼭 십년이 되었으나 여전히 나는 소설 앞에서 매번 주저하고 자신 없고 용기를 잃는다. 그럼에도 이내 소설이 쓰고 싶어진다. 쓴다는 것의 가치와 의미를 애써 궁리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고에 매혹되지 않으며, 그저 즐겁다는 것에 위무받아왔다. 그것이 작가로서 나의 유일한 자부이다.

나는 늘 이 상의 이름을 가진 이효석 선생이 쓴 소설의 일부처럼,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푸르게 젖은 듯 보이는, 그런 흐드러진 달밤에 격이 맞는 얘기를 듣고 싶다. 세계는 이미 서정을 잃었고, 일상 속 개인은 그런 세계에 압도당해 무능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세계의 뒤쪽 어딘가로, 숨겨진 검은 구멍 쪽으로, 깊고도 어두워 아름다운 밤길로 흔쾌히 걸어 들어가고 싶다. 이 상 덕분에 한동안 그 밤길이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심사평
심사과정 내내 나는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의문에 빠져 있었다. 오늘 한국의 문학이 진정으로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얼마나 동시대의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공유하고 있는가. 첨예한 시대의 흐름에 과연 동시대인들에게 부응하는 고뇌와 위안의 몫을 얼마나 다하고 있는가. 다른 예술분야와 비교하지는 않더라도그들의 고통을 대변하고 혼란의 실타래를 풀어가려는 몸부림에는 그 몫을 다하고 있는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정서를 살펴보아도 그랬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언어, 그 정서를 문학이 얼마나 근사(近似)하게 담아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쉽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괴감과 함께 문학언어가 삶의 언어보다도 뒤쳐져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또 물어야 했다.

더욱이 이 시대와 환경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우리의 문학이 ‘그들만의 잔치’로 ‘그들만의 놀이’로 국지화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위 순문학지가 담고 있는 질량이나 판매부수라는 수치를 ice burg라고 생각할 때 그렇다면 그 열악함을 넘어서서 수면 밑에 감추어진 세계에서는 문학이 짊어져야 할 역할, 소명을 다하고 있는가.

또 다른 물음으로는, 언제까지 ‘한국의 문학은 단편소설’이라는 등식에서 고착되어 있어야 하는가도 있었다. short story가 언제까지 novel의 울타리 너머로 오히려 한국문학의 얼굴이 되어 표면에 떠올라 있어야 하는가. 이것 또한 일제강점기의 어둡고 부끄러운 유산이라는 자조적 검토라도 있어야 할 때가 지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오히려 ‘단편문학상’이라고 그 이름부터 정명(正名)을 되찾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 잡다한 의문 속에서도 오늘 심사 과정에서 확인하는 우리문학의 현주소는 여전히 치열하고 고통스런 모색에 차 있고 다기(多岐)하며 건강했다. 후보작들은 다양한 실험과 모색 속에서 저마다의 그릇으로 현실이라는 유동체를 담아내고 있었다.

수상자에게 가슴 깊이 축하를 드리면서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핀다’는 진정성을 새삼 생각합니다. <이효석 문학상>이라는 꽃이 더 큰 열매로 맺힐 그날을 기다리면서. <심사위원: 한수산 (소설가, 세종대교수)>

<삶의 의미와 서술의 힘>
개인적으로 나는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와 윤성희의 <웃는 동안>, 천운영의 <남은 교육>, 그리고 편혜영의 <토끼의 묘>를 인상 깊게 읽었다. 박성원에게서는, 함축적인 상황설정을 바탕으로 한 진지한 주제의식을, 윤성희에게서는, 친숙하게 여겨지는 인물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드러내는 우리 삶의 페이소스를, 천운영에게서는, 자아의 안팎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절실한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작가 정신을, 편혜영에게서는 소설의 중심 테마를 분석적이면서도 다각적인 시각으로 조망하며 삶의 의미적 단면을 포착하는 서술의 힘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네 사람 중 누구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가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오랜 논의를 거친 끝에, 수상자가 결정되었는데, 각 작품의 가치가 면밀히 비교된 후에 얻어진 결과이므로, 그만큼 더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터이다. <심사위원: 최수철(소설가, 한신대교수)>


매스컴이 ‘문학의 위기’를 들먹이든 말든, 같은 지면에서 ‘서사의 귀환’을 떠들어대든 말든, 작가들은 쓰고 또 씁니다. 심사 덕분에 지난 1년간 발표된 중단편 가운데 미처 읽지 못했던 작품들을 챙겨 읽으며, 다시금 ‘쓴다’는 일에 몰두한 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꾸준히 천착해온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을 향해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묵묵히 써오다 한순간에 어떤 경지를 뛰어넘은 듯 자유로워져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작품도 있었습니다. ‘등단 15년 이하’라는 규정이 ‘젊은 작가 지원’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하면 안 될까 싶을 정도로 아쉬운 작품을, 그 ‘15년’이 이효석 선생의 작품 활동 기간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는 의의를 듣고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심사위원 일곱 명이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린 열한 편의 작품 가운데 수상자 편혜영 씨의 작품은 [토끼의 묘]와 [동일한 점심] 두 편이었습니다. 저로선 기존에 써오던 틀에서 달라지려 비릊는 기미를 느끼게 해준 [동일한 점심]의 고즈넉함에 더 끌렸지만, 편혜영 소설의 일관된 색채가 더 잘 드러난 작품은 [토끼의 묘]인 듯합니다. “교무실에 남아 반성문을 쓰는 학생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이어가는 일상의 단면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는 소설, 읽고 난 뒤 오스스 한기가 들어 문득 주위를 둘러보게 만드는 편혜영의 특징이 이 소설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지시하는 사냥감을 단지 잡아오기만 하면” 될 뿐 “무엇을 잡을지, 잡은 후에 구울지 삶을지 버릴지 박제를 할 지 결정”할 권한도 그 결정에 참여할 기회도 없는 이의 적막한 나날이 도시락 뚜껑을 열고 대하는 식은 밥처럼 눈앞에 다가듭니다. 원래 붉은 토끼의 눈에서 “저리 눈이 붉어지도록 피곤하고 지친 존재”를 느끼는 작가에게 이 상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사위원: 이혜경(소설가)>



예심에 올라온 10여 편의 후보작들은 등단 15년 이내라는 이효석 문학상 규정에 맞춤하게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작가가 아닌 작품에 주어지는 이 상의 취지에 맞게 다양한 색깔을 지닌 개성 있는 작품들이 특정한 경향이나 세대와 상관없이 추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본심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중복 추천을 받은 작품은 4편이었다. 전성태의 「이미테이션」,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2」, 윤성희의 「웃는 동안」, 편혜영의 「토끼의 묘」가 해당 작품들이다.

전성태의 「이미테이션」은 순 토종 한국인인데도 별명이 “양키” 아니면 “튀기” “아이노코”일 정도로 “다국적 외모”를 지닌 주인공이 ‘명실상부’하게 군 입대에서도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이라는 조항에 의거하여 면제 받으려는 해프닝 아닌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인공 하천, 원어민 영어 과외, 짝퉁 가방 모티프 등을 통해 인생 자체가 원본 확인이 불가능한 ‘이미테이션’에 불과함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시니컬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가의 특장인 능청스러움이 원본에 대한 집착을 희화화시키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2」는 근대문학의 오랜 주제인 “사막일 수 없는 사막”으로서의 도시 문제를 새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흔할 수 있는 주제를 정면 돌파하려는 작가의 배포가 대단하다. 21세기적인 도시의 고현학이나 세태소설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심리 묘사나 이미지의 적절한 활용으로 인해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는 소설이다. 매미와 변태 모티프, 유아 성추행범들과 잃어버린 아빠와의 교직, 희생 제의의 상징성 등이 도시의 폭력성과 허무함을 적절하게 모자이크화하고 있다.

수장작과 함께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윤성희의 「웃는 동안」은 특히 주인공과 조카가 이야기 나누는 앞부분의 유머러스한 전개가 압권이다. 하지만 유령 화자가 나타나면서 소위 ‘이태백’ 세대들의 아픔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특히 이들의 아픔은 아이러니하게도 ‘웃고 있는’ 동안 더 진하게 전해진다. 이들은 웃으면서 실패를 이야기하고, 웃으면서 죽음과 대화한다. 그리고는 별 볼일 없을 수도 있는 자신들의 미래와도 화해한다. 한 명의 죽음을 통해 나머지 3명의 인물들이 죽은 친구가 남긴 소파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공중부양의 경지까지 상상하게 하는 결말은 따뜻하면서도 짠하다.

수상작으로 결정된 편혜영의 「토끼의 묘」는 『아오이 가든』에서의 비일상적이고 환상적인 폭력이 『사육장 쪽으로』에서부터 일상적이고 심리적인 공포로 변화하고 있는 작가적 특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동일한 점심」에서의 ‘인문대 구내식당의 정식 A세트’의 역할을 이 소설에서는 ‘파견 근무’ 모티프가 담당하고 있다. 입사해서 일정한 시간이 되면 한직으로 파견근무를 나간다. 그리고는 거기서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일을 한다. 또한 파견 근무가 끝날 무렵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파견근무자들이 기르다가 공원에 버리는 토끼는 도시로부터 시용가치가 다 하면 버려지는 파견근무자들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전임인 상사나 주인공 ‘나’, 그리고 자신의 후임인 후배 모두 동일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이런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인 조직 체계, 일상의 무의미하고도 악무한적인 반복성을 공포스럽게 전하고 있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것은 낯선 것에서 익숙한 것을 발견할 때보다는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발견할 때라는 사실이 새삼 절감된다. 지리멸렬한 듯한 일상의 전개 속에서 어느덧 카프카적 성(城)의 세계가 ‘토끼의 묘’로 현현하게 되는 강렬함이 이 소설을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소설로 만들고 있다. 수상에 값하는 진지함과 깊이를 찾을 수 있다.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김미현 (문학평론가, 이화여대교수)>


등단 15년 이하의 젊은 작가에게 수여되는 이효석문학상의 심사에서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작품은 윤성희의 ‘웃는 동안’과 편혜영의 ‘토끼의 묘’ 두 작품이었다.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2’와 전성태의 ‘이미테이션’ 역시 쉽게 젖혀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기는 했다. 다만 도시의 어두운 이면을 탐사하며 모처럼 진지한 문명비판의 기운을 전해준 박성원의 의욕적 시도가 연작 시리즈라는 형식적 한계를 깨고 이 작품만의 별도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점입가경의 입담으로 시류에 대한 풍자적 해학을 보여준 전성태의 지속적인 작업이 불필요한 에피소드들을 산만하게 배치하고 있다는 평을 넘어서기는 힘들어 보였다.

윤성희와 편혜영의 경우도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후보작들이 이 작가들이 도달한 자기 세계, 소위 자기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이전의 작품들을 다소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심사위원 모두는 이 두 작가 가운데 누가 수상자가 되더라도 이효석문학상의 취지와 권위에 조금의 무리도 없을 것이라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그만큼 두 작가는 오늘날 한국문학의 한 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만 했다. 죽은 자의 입을 빌어 하릴없는 젊은이 네 명의 생애를 압축하고 있는 윤성희의 ‘웃는 동안’은 이 작가의 작품이 늘 그러하듯 주변부 인생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우호적인 격려를 잊지 않고 있었으며, 편혜영의 ‘토끼의 묘’ 역시 핏발 선 것 같은 빨간 눈동자로 물끄러미 상대방을 응시하는 토끼의 이미지와 느닷없이 낯선 곳으로 옮겨진 파견근무자의 일상을 겹쳐놓으며 모더니티에 의해 유린되는 인간 소외의 한 극단을 섬뜩하게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윤성희의 형식적 세련미와 새로운 화자의 실험에 적극 공감하면서도 편혜영의 기이한 공포 쪽에 힘을 실어주게 된 것은 아마도 일상의 이면에 묻혀있는 뜻밖의 불안 요소들을 아무렇지 않게 물리치지 못하도록 만드는 우리의 현실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는 판단 때문인 듯하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우리 작품과 함께 하는 복된 시간들이었다. <심사위원: 신수정 (문학평론가, 명지대교수)>

이효석 문학상이 10회를 맞았다. 지역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으로서 10년을 이끌어왔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고맙다.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노라면 그 동안 이효석 문학상이 한국문학을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작가들을 선정하고 격려해 왔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효석 문학상이 한국문학의 흐름과 방향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마련해왔다는 사실에 대해 아낌없는 존경과 애정을 보낸다.

올해의 이효석 문학상 심사는 대단히 치열했다. 오랜 동안 논의를 가듭한 결과, 최종 심사에 올라온 작품은 4작품이었다. 단일민족의 신화를 유머러스하게 비켜가며 잡종성에 대한 알레고리를 제시한 전성태의 「이미테이션」, 변태성과 정상성의 이분법이 실제로는 상품의 논리에 의해 재/구성됨을 밀도있게 보여준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2」, 죽은 ‘나’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어서 삶의 내밀한 흔적과 흔들림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윤성희의 「웃는 동안」, 애완동물도 아니고 반려동물도 아니고 가축도 아닌 토끼를 통해서 자본주의적 일상에 배어있는 공포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편혜영의 「토끼의 묘」 등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후보작품들에 대한 열띤 토론을 거쳐 주제의식과 작품구성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보인 편혜영의 작품을 10회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이효석 문학상 심사과정에서 논의되었던 작가들과 이효석 문학상을 이끌어온 관계자들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심사위원: 김동식 (문학평론가, 인하대교수)>

추천된 작품들 가운데 심사위원들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2」, 윤성희의 「웃는 동안」, 전성태의 「이미테이션」, 편혜영의 「토끼의 묘」 등 네 작품에 모아졌다.

그 가운데 박성원의 경우는 해당 작품이 이제 막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연작 가운데 일부라는 사실이 평가를 유보하게 만들었고, 전성태의 경우는 네이션의 경계를 일관되게 문제 삼아온 그의 소설이 최근 들어 주로 풍자적인 방식의 현실 비판으로 흐르면서 일면화되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는 지적이 있었다.

결국 윤성희와 편혜영의 작품을 두고 최종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두 작가 모두 단편 형식에 중심을 두고 한 가지 주제를 천착해왔다는 점에서 수상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데 대체로 이견이 없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심사위원들이 그 두 작품에 대해 갖는 감상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가 결국 편혜영의 「토끼의 묘」를 수상작으로 결정하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두 작품에 대한 내 감상을 짧게 적음으로써 심사평에 대신하고자 한다.
네 명가량의 인물이 등장한다거나 그 인물 가운데 일부 혹은 전부가 이미 사망했다는 설정은 최근 윤성희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며 「웃는 동안」 역시 거기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최근 윤성희의 소설에서 유사한 스타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변주 가운데에서 인물과 시점의 실험이 조금씩 확장되고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윤성희 소설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이 확장과 심화를 매 작품마다 확인하는 데서 오기도 한다. 「웃는 동안」에 이르면 그 실험은 무르익어 서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에, 그 비관습적 실험의 장치들이 서사의 이질감을 야기하지 않는다.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해도, 그 중의 한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혼란스럽거나 낯설지 않다.

이 자리에서 자세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윤성희 소설에서의 그와 같은 인물과 시점의 실험이 단순히 기존과는 다른 시도를 해보는 차원 이상의 의의를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윤성희의 소설이 미니멀리즘의 일반적인 스타일과 차별되는 면이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명의 등장인물에 분산된 시점은 자아의 추구에 유폐되지 않은 의식을 담아내고 있으며, 그러하기에 그 시점은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 의식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는 근대 소설의 일반적이고도 오랜 관습의 궤도를 다른 방향으로 틀고 있다. 그것은 동시에 자아와 세계의 대립 구도가 아닌 긍정을 통한 상호 공존의 구도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그처럼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마저도 해체된 세계 속에서 윤성희 소설의 인물들은 (수평적 관계 같은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지만) 수평적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따뜻한 유머와 쓸쓸한 비애감이 교차하는 그 관계를 들여다보며 우리가 얻는 위안은 그 관계가 표상하는, 포스트모던의 상황에 대응되는 윤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토끼의 묘」는 편혜영의 최근 소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파견근무자’ 모티프를 취하고 있다. 「관광버스를 타실래요?」(『세계의 문학』, 2008. 가을)와 「정글짐」(『문학수첩』, 2009. 봄)에서처럼 이 소설에서도 역시 주인공인 ‘그’는 자신이 왜 파견되었는지, 그리고 파견되어 하고 있는 업무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물론 카프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더해 이 소설은 파견근무자인 ‘그’가 결국 상사의 자리에 놓이게 되는 원환 구조라는 독특한 서사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구성상의 특징은 문화적 단절의 체험과 연관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단편에서는 충분히 담기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 점에서 그와 같은 구성상의 특징은 말로나 윌라드가 결국 커츠의 자리에 놓이게 되는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심연』이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지옥의 묵시록」, 혹은 기상관 ‘나’가 전임 기상관 바티스 카포와 겹쳐지는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차가운 피부』와 같은, 그 방면에서의 보다 본격적인 텍스트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쨌든 그와 같은 새로운 소설적 모티프와 더불어 편혜영의 소설은 「아오이 가든」 이후의 그로테스크한 환상, 그리고 그 환상의 현실적 연원을 이루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을 통과하여, 그 심층에서 작용하는 정체성의 상실감과 문화적 단절감의 깊이까지 담아내는 지점에 이르렀다. 내가 편혜영의 소설에서 본 것은 그와 같은 새로운 겹을 머금고 있는 봉오리였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미 피어난 꽃잎이 보였던 모양이다. <심사위원: 손정수 (문학평론가, 계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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