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제24회 이효석문학상(2023년)

메밀꽃 필 무렵 2023. 11. 8. 16:05

안보윤

 

수상작

 

안보윤 애도의 방식

 

작가 약력

소설가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나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장편소설 여진, 밤의 행방

2023년 현대문학상, 2021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2009년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

 

 

예심을 거쳐 본심에 진출한 작품(작가명 가나다 순)

작 가 작 품 출 처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문학과사회, 2022년 겨울호
김병운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자음과모음, 2022년 겨울호
김인숙 [자작나무 숲] 자음과모음, 2022년 겨울호
신주희 [작은 방주들] , 2023년 봄호
안보윤 [애도의 방식] 문학동네, 2022년 겨울호
지혜 [북명 너머에서] 현대문학, 20231월호

 

 

심사위원

 

심진경(심사위원장)

문학평론가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동대학 국어국문학 박사.

1999년 여름 계간 [실천문학]여성성, 육체, 여성적 시 쓰기를 발표.

[파라 21], [문예중앙] 편집위원 역임.

계간 [자음과모음] 편집위원.

저서로,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 떠도는 목소리들, 여성과 문학의 탄생,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한국문학과 섹슈얼리티

옮긴 책으로 근대성의 젠더(공역).

현재 서강대학교, 서울예술대학 등에서 강의.

 

이경재

문학평론가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국문학과 석사, 박사 졸업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1년부터 현재까지 숭실대 국문학과 교수

14회 젊은평론가상 수상

29회 김환태평론문학상 수상

<단독성의 박물관>을 비롯하여, 19권의 평론집과 학술서 출간

 

정이현

소설가

2002<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상냥한 폭력의 시대>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연인들>, <내 모든 것>

중편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작가상 등 수상.

 

박인성

문학평론가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비평 부문으로 등단

옮긴 책으로 정신분석과 이야기 행위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인성교양학부 조교수

 

24회이효석문학상 운영위원

 

위원장: 방민호(재단 이사장, 평론가)

위 원: 전지현(매일경제 문화부 부장)

위 원: 박동옥 (교보문고 IP사업단 단장 )

간 사: 김정은(교보문고 문학IP팀 에디터/차장)

간 사: 김유태(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간 사: 이지훈(서울대한국어교육센터 팀장, 재단 이사)

 

 

 

수상소감

 

자음과 모음을 낱낱이 풀어 손에 쥐고 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석으로 되어 어디든 착착 붙던 한글 놀이 자석 세트였는데,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손안에서 조몰락대던 그 글자들이 언제든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요. 동시에 그때 이미 알게 된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살아가게 될 글자들의 세계가 얼마나 입체적이고 선명한지에 대해서요.

한글 낱자들을 연이어 붙이면 글자가 되고, 그 글자들을 소리 내 읽으면 세계가 시작됩니다. 말과 소리를 수줍게 싸서 누군가에게 건네면 관계가 시작되고, 주렁주렁 얽힌 무수한 타래를 박제시키면 역사가 됩니다. 글자를 몇 개 조합하는 것만으로 와락 일어서는 세계란얼마나 매혹적인지요. 그러나 그 세계는 끈질기게 이어붙이지않으면 순식간에 붕괴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멋대로 기괴해지고 손쉽게 부정당하고 누군가를 틀림없이 상처입힙니다. 어쩌자고 이런 무서운 것을, 어린 시절엔 굴리며 놀 수 있었을까요. 입에 넣고 우물거리거나 냉장고 따위에 철썩 붙여둘수 있었던 걸까요.

낱자를 더듬어 붙이던 어린 시절처럼 저는 여전히 글자들을 골라내고 있습니다. 활자를 조판하듯 백지 위에 하나하나 조심스레 올립니다. 어떤 글자들은 몰래 손바닥에 써서 삼켜버리기도하고, 어떤 글자들은 담벼락에 휘갈긴 뒤 도망치기도 합니다. 누군가 읽어버릴까 봐, 혹은 아무도 읽지 않을까 봐 늘 두려워하면서요. 수상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그 글자들의 무게를 떠올렸습니다. 정확히는 글자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소설 속 세계의 무게에 대해서입니다.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쌓아 올린 이 세계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 고민해보겠습니다.

제게는 더없이 달고도 무거운 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심사경위 및 심사평

 

 

 지금 우리는 임박한 사회적 붕괴의 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미래를 꿈꾸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치나 농담이 되어버린 시기에, 문학을 쓰는 행위 혹은 읽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단순한 자조나 무기력은 아니다. 마크 뷰캐넌이 언급하는 사회물리학은 문학이 상정했던 인간적 가능성을 사회적 구조와 원자화된 개인의 기능적 차원으로 재규정한다. 개인의 힘으로는 더이상 세상은커녕 자기 자신조차 바꾸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하나의 거대한 관성이 되고, 그러한 관성은 우리 자신이 더 강한 힘과 자극에 반응하며 정해진 패턴대로 움직이는 물리학적 원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공포와 혐오에 짓눌려 주어진 자극에만 반응하며 살아가는 현대사회를 보고 있자면 그러한 관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의 역할과 효용이란 내면이나 개성이라는 개념과 작별함으로써 한껏 납작해진 개인의 가능성을 다시금 부풀림으로써 알고리즘처럼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에 숨통을 틔워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회구조적인 관성에 떠밀리는 개인의 이야기 속에서 멈추어 상상하는 순간을 발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3년 이효석 문학상은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사회를 직시하면서도 결코 사회적 분위기나 패턴화된 삶에 짓눌리지 않는 소설 속 인물들의 입체적인 가능성의 영역에 집중하고자 했다. 물론 여기에는 문학의 고유한 가치만큼이나 시의성에 대한 예민한 감각들을 활용한 것에 대한 주목이기도 했다. 이미 2021년과 2022년 이효석 문학상은 비교적 젋은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이서수, 김멜라처럼 등단 10년 이내 작가들을 선정하여 동시대적인 문학상으로서의 젊은 감각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반드시 젊은 작가들이 더 시의적인 소설을 쓰는 것만은 아니며, 심사위원들 또한 그러한 관점을 주된 심사 기준으로 설정하지는 않았다. 가급적 넓은 시선으로 오늘날의 문학적 지형을 읽어내면서, 작품 개개에 대한 해석적 판단만큼이나 시의성과 문학적 형식성에 대한 평가 기준을 섬세하게 절충하고 재검토하고자 했다.

 심사 과정은 다음과 같다. 심사위원들은 20226월부터 20235월까지 기성 문예지 및 온라인 웹진에 발표된 소설 작품들을 두루 검토한 뒤, 자신들의 추천작을 취합하여 1차 독해를 먼저 수행했다. 1차 독해에서는 총 13편의 후보작이 추천되었으며, 심사위원들은 각각의 작품들에 대한 감상과 해석을 두루 교환하였다.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으며 추가적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할만한 작품들을 재추천하는 방식으로 다시 2차 독해를 수행하며 6편의 작품들을 선발하였다. 2차 독해 후보작으로는 강보라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김병운의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김인숙의 자작나무 숲, 신주희의 작은 방주들, 안보윤의 애도의 방식, 지혜의 북명 너머에서가 심사위원들의 공통적인 추천 및 선택을 받아서 선정되었다. 이제 한편씩 심사 과정에서 언급된 핵심들을 정리하면서 최종적인 수상작에 대한 심사평까지 나아가고자 한다.

우선 강보라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취향의 계급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 시대 고급문화에 대한 허영과 자존감 사이에 놓인 개인 심리의 미묘한 저울질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강보라 작가가 데뷔작에서부터 그래왔듯, 우붓이라는 이국적 장소성과 그곳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관성적인 취향의 우월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경계를 넘나드는 주인공 재아의 심리를 다소 집요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의 핵심은 자신이 믿는 문화적 취향이 속물적 우월성으로 변하는 지점을 애써 들추려 하지 않는 자기방어의 제스쳐를 거리화해서 바라보는 반성적 시선이다. 문학을 하나의 취향으로서 소비하는 소설 독자라면 섬짓할 수도 있는 이 소설의 신랄함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소설 내내 팽팽하게 유지되어왔던 재아의 스스로에 대한 자조와 냉소의 긴장감이 결말에 이르러 다소 쉽게 해소되었다는 감상도 있었다.

 김병운의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는 퀴어 서사에 대한 관성적인 이야기 문법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세대의 퀴어로서의 삶을 새롭게 교차하는 더 넓은 의미에서의 교차성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오늘날 많은 형태의 담론들이 그렇지만, 현재의 변화하는 시대적 분위기나 새로운 세대의 등장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그것을 시의적이거나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때, 수평적이고 공시적인 차원의 소재로만 여겨지기 쉽다. 담론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사연을 지닌 개인의 삶을 그려내는 섬세한 조형과 표현은 끊어진 줄 알았던 관계를 접붙이고 멈춰있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드는 서술적 효과를 충분히 매력적으로 전달한다. 죽은 줄 알았던 진무 삼촌의 생존을 알고서 그를 만나기 위해 부산에 방문하는 주인공 장희와 그를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는 서술자 에 이르는 겹겹의 시선이 기본적으로 따스하다. 하지만 그러한 각각의 사연들을 교차하는 시도 속에서 다소 구구절절한 측면이 있다는 감상 또한 존재했다.

 김인숙의 자작나무 숲은 서두에서부터 독자를 압도하는 소설적 분위기와 낯선 상황적 설정에서부터 비롯된 매력으로 심사위원들을 우선 압도했다. 어느 것도 자신의 혈족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 쓰레기 호더할머니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할머니의 집,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애증 섞인 시선과 신랄한 서술만으로도 이 소설의 읽는 재미는 보장된다. 오늘날 상속이라는 이름으로 부의 대물림 혹은 끈질기게 무언가를 영속하길 바라는 인간적 욕망에 대비하여, 이 소설은 사회적인 시선에서 가치 없는 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할머니의 삶과 쓰레기더미처럼 쌓인 해석적 복잡성 속에서 자기 가족에 얽힌 연대기적 삶을 파해치고자 하는 해석적 욕망이 손녀 자신의 삶까지 지배하는 치명적인 관계를 묘사한다. 결코 한 겹의 껍질을 벗겨낸다고 해서 밝혀낼 수 없는 진실처럼, 명백한 진실을 찾으려 하는 시도는 인간 정신의 복잡성만큼이나 이 소설의 중층적인 형식에 무력해진다.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하여 심사위원들은 거듭 다양한 해석적 가능성을 논의했으며, 동시에 작은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소설 전체 형식에서 수미상관을 구성하며 자기 자신의 삶에 갇혀 버린 삶의 복잡성을 그려내는 방식은 김인숙 작가의 인장(印章) 같은 수법으로 그 해석적 복잡성에 독자를 매료시킨다. 하지만 처음부터 명확한 메타소설로서 시작하지 않았던 이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할머니와 손녀 사이의 모호한 시선과 관점을 드러내는 방식은 매력적인 열린 결말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남았다.

 신주희 작가의 작은 방주들의 경우는 2차 독해에 올라온 최종 후보작들 중에서도 다소 예외적인 성격을 가진 작품으로 언급되었다. 시의성 있는 소재뿐만 아니라 복잡하기 작이 없는 오늘날의 세계를 조감하는 높은 시선을 구성하고자 도전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우리 시대의 개인이 꿈꾸는 저마다의 방주라는 미약한 구원의 형태와 그 ()가능성을 탐문해 나가는 과정을 생생한 직장 생활의 재현과 치밀한 소설 구성적 논리를 통해서 전달한다. 특히 짠내 나는청년 세대의 이야기를 그저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직장 생활의 구조적 부조리, 인공지능이나 암호화폐에 대한 장밋빛 환상에 들뜬 사회적 현상 이면에 소외되는 인간적인 삶의 맨얼굴을 들추는 과정이 맞물린다. 소식을 끊고 사라진 친구 진주가 있을리 만무함에도 유우니 사막을 향해 가는 주인공 은재의 여행은 현기증 나는 현대사회의 대립항으로서 자기 자신조차 돌볼 수 없는 관성적인 삶으로부터 벗어나 개인들이 결국 만들고자 하는 작은 방주들에 대한 서글픈 탐색 과정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매력은 개성적이지만 다양하고 포괄적인 소재를 다양하게 다루는 만큼 그것을 종합하려는 노력에 비하여 다소 밀도가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혜 작가의 북명 너머에서2차 독해에서 언급된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클래식한 단편소설 고유의 미학적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성자가 과거 북명백화점에서 일하던 시절을 반추하며, 친밀하게 지냈던 조옥이라는 인물과 그와의 관계에 대하여 생생하게 복원하는 과정의 서술이 시대적인 분위기나 당대의 장소성과 맞물려 더욱 매력적으로 읽힌다. 특히 두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호감과 애정이 발전하는 과정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이 서로의 사정에 의해서 엇나가고 멀어졌는지를 그리는 과정의 애틋함이 과거를 회상하는 소설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비록 과거의 기억이나 조옥과의 관계성을 끊어내기는 어렵지만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자 노력한 서술적 시선과 거리감이 매력적인 한편, 그러한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감상주의에 지나치게 인접해 있다는 점은 다소간의 아쉬움으로 함께 언급되었다.

 마지막으로 안보윤의 애도의 방식은 단적으로 말해서 모든 면에서 단점을 찾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안보윤 작가는 그동안 비교적 강한 소재를 적극적으로 다뤄온 작가로서, 이번 소설도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지만 단순히 소재적인 강렬함이 아니라 그것을 소설적으로 형상화하는 놀라운 조형적 성취가 심사위원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소재주의라는 말을 격식 있게 극복함으로써, 이 소설은 소설적 주제와 동시대적인 메시지를 동시에 달성했다. 오늘날 학교폭력의 한 가지 현실을 직접적인 당사성으로 경유하면서도 그것을 근거리의 시선에 압도되지 않고 그려내는 침착성은 우선 주목을 요구한다. 이 소설은 촘촘하게 엮인 씨줄과 날줄처럼 소재와 장소, 문장과 비유 인물의 관계와 그 표현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부분을 허투루 읽을 수 없는 촘촘한 밀도의 소설적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 주인공 동주가 도달한 미도파라는 찻집은 언제나 늘 소란 속에 있지만 소란스러워지지는 않는 공간적 특수성을 가진다. 그곳은 승규의 죽음 이후 어떻게든 그것을 가십화하기 위한 의심 어린 질문에도 응답하지 않고 동주가 도달한 침묵과 멈춤의 공간이다. 학교폭력을 다루는 서사화 작업은 대중문화콘텐츠부터 본격문학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들이 오늘날 꿈꾸는 사적 제재와 복수의 서사는 그것을 소비하는 관성적인 욕망의 플롯이기도 하다. 안보윤의 애도의 방식은 말 그대로 관성에 짓눌려 있는 폭력의 굴레와 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강요된 질문에 대하여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고자 노력한 소설이다. 동주가 승규의 관성적인 폭력의 순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다른 응답을 시도한 것처럼, 그리고 승규의 엄마인 여자가 집요하게 동주를 찾아와 진실을 요구하던 것에서 벗어나 결국 승규에게 어떤 진실을 듣지 않고도 떠나가서 섬에서 혼자 시금치를 키우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처럼, 오늘날 문학은 어떤 멈춤의 순간을 발명하는 윤리적 태도에 값할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심사위원들은 안보윤의 애도의 방식을 만장일치로 2023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할 수 있었다. 훌륭한 소설을 선보인 안보윤 작가에게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건낸다.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은 소설적인 완성도만큼이나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진지한 삶의 태도를 묻고 답할 수 있는 멈춤의 순간을 제공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서 심사평에서 지속적으로 관성이라는 표현을 활용했다. 지금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사회 구조적인 힘의 논리와, 개개인의 삶의 관성에 대하여 우리는 과연 얼마나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고 스스로 멈춰설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유투브 쇼츠나 수많은 인터넷상의 정보 사이를 누비다보면 어느샌가 휘발되어버리는 시간의 밀도만큼이나, 우리는 사회적 현실의 흐름에 스스로를 지탱하고 저항하는 힘을 상실해가고 있다. 문학적인 반성적 인식과 그에 따른 변화의 시도마저도 어쩌면 하나의 사회적 원자로서의 작용-반작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적인 의심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문학적인 공동체와 개별 문학인들이 끊임없이 동시대적 현실과 부대끼면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론이라는 사실을 믿어볼 필요가 있다. 2023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 애도의 방식은 물론이고, 이 수상작품집에 함께 수록된 우수상 작품들은 모두 그러한 부대낌의 결과물이며, 독자들에게도 기꺼이 현실의 관성에 저항하고 멈춰서 생각할 수 있는 사유와 발견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다시 한번 모든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24회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단

심은경, 이경재, 정이현, 박인성

(심사위원 박인성 평론가 대표 집필)

 

 

 

 

시상식

 

장 소: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이효석문학관

일 시: 202399(토요일) 오전 1030

시 상: 대 상 - 상패와 상금 5,000만원, 우수작품상(5) - 상장과 상금 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