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②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메밀꽃 필 무렵 2022. 8. 6. 14:49

 

[2022 이효석문학상] 자기만의 온기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위가 사준 앵무새 한마리

평온한 일상 뒤흔들어

타인과의 조화에 대한 사유

                                                                                                       김유태 기자입력 : 2022.07.26 17:19:50

                                                                                                                        수정 : 2022.07.26 18:39:21

 

◆제23회 이효석문학상

삶에 지쳐 자주 잊고 살지만, 모든 존재는 온기를 필요로 한다. 백수린(사진) 단편 '아주 환한 날들'은 이 자명한 진리를 일깨운다.

 

혼자 사는 옥미의 이야기다. 그녀는 6년째 매일, 매주, 매달 정한 일과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반복해왔다. '월요일엔 화장실, 화요일엔 베란다, 수요일엔 냉장고.' 이런 규칙에 맞춰 집 안을 청소했고, 오후 외출이 끝나면 저녁식사를, 이어 설거지까지 마친 뒤 천변에서 1만보를 걷고 연속극을 보다 잠자리에 들었다.

 

가족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딸애와는 오래전 이미 틀어진 사이다. "당장 과일 트럭을 빼라"는 경비원과 핏대를 높여 싸우는 엄마를 본 딸애 입에서 "창피하다"는 말이 나온 적이 있었다. 분하고 창피한 마음에 옥미는 딸애 뺨을 후려쳤다. 과일 가게를 꾸렸던 남편은 대장암으로 먼저 떠났고, 집엔 옥미 혼자만 남겨졌다.

 

어느 날 사위가 앵무새 한 마리를 데려온다. "정작 사주니 장모님 손녀가 무서워하더라"며 잠시 맡긴 것이었다. 한 줌 크기 앵무새와의 동거. 저 작고 연한 것 때문에 옥미의 일상은 깨진다. 매 시간 비명 지르듯 울고, 20분마다 물똥을 싸 재끼는 녀석. 사라져 있길 바라지만 저 녀석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옥미와 앵무새의 동거는 무탈할까.

 

앵무새는 옥미의 성()을 허무는 생명이 된다. 평생 그녀는 방어적인 삶을 살아왔다. 먹고살기 위해선 규칙에서 이탈할 수 없었다. 하루만 지나도 과일이 물러 딸애 학원비를 낼 수 없었으니까. 규칙이 없으면 다가오는 불안, 그건 삶의 무게가 남긴 무형의 인장이었다. 악착같은 삶,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뒤늦게 만난 앵무새로부터 그녀는 '조화'에 대해 깨닫는다. 동물병원 원장 말처럼, 앵무새는 매일 놀아줘야 한다. 안 그러면 외로워서 죽는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두 달 뒤, 사위가 다시 앵무새를 데려가자 옥미는 그동안 단 한 줄도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평생교육원 글쓰기 수업의 과제 첫 줄을 쓰기 시작한다.

 

'앵무새가 가 버렸다.'

 

오정희 소설가는 "신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여성은 고독 속에서 일과를 '자기만의 성'처럼 쌓아뒀다. 강고했던 틀이 어떻게 허물어지게 되는지를 따라 읽다 보면 그것이 사랑으로 가는 통로임을 알게 된다"고 평했다. 김동식 평론가는 "라캉 표현대로 우리가 상상하는 관계성이란 완벽한 상호적 관계일 때가 있다. 소설의 여성은 앵무새를 통해 완벽한 상호성을 느끼게 된다"고 강조했다. 요즘 소설과 달리 풍경 묘사가 삽입된 점이 눈에 띈다. 백수린의 섬세한 글에 관한 찬사도 잇따랐다. '마룻바닥은 새가 닿았던 자리만큼의 크기로 따스했다'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과 같은 문장엔 밑줄을 긋게 된다.

 

1982년 인천에서 태어난 백수린은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며 데뷔했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중편 '친애하고, 친애하는' 등을 출간했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김유태 기자][ⓒ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