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④ 이주혜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메밀꽃 필 무렵 2022. 8. 8. 16:04

 

[2022 이효석문학상]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 격리의 밤이 시작됐다

 

장어구이집서 만난 삼총사

코로나19 양성통보에 분열

고립은 정말 질병 때문일까

 

 

                                                                         ●  김유태 기자 입력 : 2022.08.07 16:30:33  

                                                                                                 수정 : 2022.08.07 19:02:45

 

◆ 제23회 이효석 문학상 

지원, 수라, 미예가 파주의 장어구이집에서 만난다. 이틀 뒤 오전, 수라에게서 걸려온 전화. 방금 남편이 코로나19 양성 판정 통보를 받았다는 다급한 목소리다. PCR 검사 결과 미예와 미예의 아들이 양성, 지원네는 그나마 음성이다. 지원 남편과 아이는 시댁으로 피신하고, 밀접접촉자인 지원은 격리된다. 아직 체온은 37.4도. '격리의 밤'이 시작됐다.

 

이주혜 단편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는 전염병 확산을 다룬 작품이다. 질병의 무서움보다 고립된 인간에 대한 지원의 사유가 이야기를 이끈다.'삼총사'의 인연은 10년 전 학부모 참관수업 때 시작됐다. 아이들은 초교 1학년이었고, 세 사람은 나이는 달라도 어딘지 모르게 통하는 곳이 있었다. 매운탕집에서 낮술로 소주잔을 부딪치고, 뜨개질과 프랑스 자수를 배우기도 하는 화목한 여성들. 10년째 이어진 만남은 코로나19로 전환기를 맞는다. 미예는 수라에게 격분한다.

 

장어구이집에서 수라는, 남편이 술을 마시고 자정 넘어 들어왔다고 말했었다. 방역수칙 위반이었고 심지어 수라 남편은 감기 증상까지 보였다. 확진을 의심했어야 마땅한데도 우리를 모이게 했다며 미예는 다다다다 쏘아붙인다. "우리 태윤이, 날 벌레 보듯 한다고. 어디서 불량하게 처놀다가 중간고사 앞둔 아들한테 바이러스나 옮기는 형편없는 엄마로 본단 말이야."

 

혼자 남겨진 지원은 삼총사의 만남을 생각한다. 셋은 자주 파주에 놀러 갔었다. 만날 때마다 하늘이 잔뜩 찌푸려지거나 비가 흩뿌리거나 미세먼지가 심했다. 파주와 날씨의 상관관계는 삼총사만의 농담이었다. 흐릿했던 날씨, 어쩌면 사람이란 언제나 상대를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부연 마음인지도 모른다.

 

일이 벌어지고 나니, 웃음과 농담 아래 깊이 잠자고 있던 어긋난 감정이 폭발한다. '네' 아이가 '내' 아이를 서운하게 했던, 그런 너저분한 사건들. 지원은 이어 고립의 한때를 생각한다. 유도분만에 실패하고 아이를 수술로 꺼낸 뒤, 혼자 남겨졌던 그날, 산부인과 회복실에서의 밤을.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또는 자기 자신만의 어떤 이유로 이미 고립돼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이경재 평론가는 "고립의 실감을 생생하게 드러내면서도 코로나19가 만들어냈다는 고립이 사실 허구일 수도 있음을 짚었다. 친하다고 여기던 세 명이 모두 자기의 시선과 입장으로 고립돼 있듯이 말이다"라고 평했다. 편혜영 소설가는 "소설에 나오는 시선들이 복합적이어서 흥미로웠다. 여성들 내부에서도 혐오와 차별의 시선이 지나가는 등 현실적 모습을 그렸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인류가 지난 2년간 경험했던 코로나19를 사유하는 문장들이 돋보인다. '체온은 내 몸이 보내는 기척이었지만, 더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나와 상관없는 무엇이 당분간 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는 문장은 양성 반응과 확진으로 격리돼 본 이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법하다.

 

이주혜 작가는 1971년생으로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경장편소설 '자두', 소설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출간했다.

 

[김유태 기자][ⓒ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