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① 정한아 '지난밤 내 꿈에'

메밀꽃 필 무렵 2022. 8. 6. 14:33

 

[2022 이효석문학상] 모녀의 애증 사이로 스며나오는 생의 진물

 

한센병이었던 한 여성과

그녀가 고아원에 맡긴 딸

두 사람, 화해는 가능할까

 

                                                                                 ⁕김유태 기자입력 : 2022.07.24 17:08:37  

                                                                                                 수정 : 2022.07.25 11:19:53

 

◆ 제23회 이효석 문학상

[사진 제공 = 유혜인]

그녀는 한센병이었다. 남편과는 한센인 수용소, 정확히는 섬 안 교회에서 만났다.

 

사실, 그녀에겐 두 번째 혼인이었다. 발병을 처음 알았을 때 그녀의 전남편은 극약을 건네며 말했다. "조용히 죽으라."

 

그녀는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일생을 죄의식 속에 살았다. 시간이 지나 그녀의 손녀, 화자인 '나'가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엄마는 외조모가 섬 안에서 결혼해 낳은 딸이다. 외조모는, 그리고 엄마는 어떤 삶을 걸어왔을까.

 

정한아 작가의 단편 '지난밤 내 꿈에'는 한 가정의 여성이 겪은 스산한 아픔을 다룬 소설로 '외조모-엄마-나'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애증을 기반으로 삼으면서 '버림과 버려짐'의 역사를 다룬다.

 

외조모와 엄마는 불화와 반목을 주기적으로 반복해왔다. 모녀에겐 결코 망각이 불가능한 과거가 있었다.

 

가해자는 외조모. 외조모와 외조부는 오래전 한센인 협동농장에서 일했는데, 부부는 '나'의 외숙부인 아들만 데리고 농장으로 갔고, '나'의 엄마인 유일한 딸은 고아원에 맡겼다. 두 자식 중에 딸은 버리고 아들만 챙긴 것이다. 외조모가 딸을 되찾은 건 10년이 지나서였다.

 

엄마는 말한다. 고아원에서 보낸 시간이 자신을 망쳐놨다고. 불신과 환멸을 고아원에서 다 배웠다고.

 

생의 출발이 불온했기 때문이었는지, 엄마의 삶은 가시밭길이었다. '나'의 아빠는 처가를 "재수 옴 붙은 집안"이라며 모멸감을 줬고, 때로 엄마는 곤죽이 되도록 맞았다. 정작 친정에서 외조모는 딸을 나무랐다. "임서방 비위 거스르지 말고 조용히 살아." 도대체 외조모는 왜 그렇게 딸에게 인색했던 걸까. 두 사람에게 '나'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걸까.

 

소설은 한센병이던 외조모를 중심에 두고 그녀의 삶에서 줄기와 가지처럼 뻗어나온 여러 생들이, 붉은 속살이 밖으로 훤히 드러나도록 상처받고 살아가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열 명분의 인생을 산 것 같다"고 고백할 정도로, 고단했고 비참했던 외조모가 겪은 극심한 생의 통증이 시간이 흘러 그녀의 딸과, 또 그녀의 딸에게 어떻게 슬픈 유산처럼 물려지는지를 바라보다 보면 질병을 가진 여성의 삶, 그럼에도 질긴 생을 끊어버릴 수 없던 인간의 비참이 문장 사이 얼룩진 진물처럼 스며나온다.

 

김동식 평론가는 "선대의 상처를 해원하기 위해 접근하는 방식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정서적이든 이념적이든, 어느 한 시대를 이해하고 그 상처를 화해시키려는 시도가 돋보였다"고 강조했다. 구효서 소설가는 "정한아 작가도 어느덧 40대가 되면서 소설이 한결 성숙하고 어른같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할머니를 중심에 둔 가족사의 의미를 주목하며 읽었다"고 말했다.

 

1982년생 정한아 소설가는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을, 2007년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 '애니' '술과 바닐라', 장편소설 '달의 바다' '리틀 시카고' 등을 펴냈다.

 

그가 출간한 2017년작 장편 '친밀한 이방인'은 올해 배우 수지가 주연한 드라마 시리즈 '안나'의 원작이기도 하다.

 

[김유태 기자][ⓒ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