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③ 김멜라 '제 꿈 꾸세요'

메밀꽃 필 무렵 2022. 8. 6. 15:04

[2022 이효석문학상] 죽음을 15초 남겼을 때,

녀석이 나타나 노래를 불렀다

 

가이드가 망자 여행 이끄는

사후 세계에 관한 이야기

맑고 귀여운 상상력 돋보여

                                                                                 김유태 기자 입력 : 2022.07.31 16:55:16

                                                                                    수정 : 2022.07.31 16:55:57

 

◆ 제23회 이효석 문학상

죽은 사람은 사후 며칠 뒤 지인의 꿈에 나온다고들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다시 보지 못하리란 간절한 그리움이 무의식 속의 망자를 호명해낸 결과이겠지만, 김멜라는 이 낭설에 귀여운 상상력을 덧댔다. 단편 '제 꿈 꾸세요'는 사후 세계 망자들의 여행을 다룬다.

 

혼자 살던 30대 무직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방금 죽었다. 수면제를 삼키고 사흘 만에 깨어났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며 급히 먹은 '원 플러스 원' 초코바에 목이 막혀 죽어버렸다. 아뿔싸, 뭔 이런 죽음이? 그런데 의식이 흐릿해지던 마지막 순간에 웬 이상한 게 나타나 그녀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녀석의 이름은 '챔바'였다.

 

챔바는 친절히 설명한다. 15초 뒤 심장박동이 멈추고, 뇌에 산소 공급이 끊기면 그녀가 '길손'이 되어 떠날 것이라고.

 

그러니까 챔바는 죽음의 가이드다. 망자는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가 되어 다른 사람의 꿈으로 가야 한단다. 길손이 된 그녀와 챔바 사이에 쓰러진 그녀가 있다. 혼자 사망한 그녀는 꿈을 통해 도움을 청해야 한다. 자신의 시신을 발견해 줄 그 누군가에게.

 

다른 사람의 꿈으로 가는 길, 모든 상상이 꿈에 펼쳐진다. 굵고 탐스러운 눈이 쏟아지는 꿈속, 종아리까지 눈이 쌓였다. 챔바는 힘들다며 "굴러가면 굴러갔지 난 더 못 걸어요"라고 어리광을 부리면서 눈 좀 그치게 하라고 투정이다. 죽은 그녀는 친구 규희의 꿈에 가려다가 방향을 틀고 과거 사귀었던 세모에게 가려 한다.

 

챔바에 따르면 어떤 사후 세계엔 천국도 지옥도 없다. 그곳엔 슬퍼했던 사람들, 그래서 길손이 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 죽음은 '깨어남'이다. 가슴에 노란 실로 챔바챔바라고 박음질 된 주머니를 단 챔바는 말한다. "여기선 깨어났다고 해요." 죽고 나면 그뿐, 망자들은 하던 일을 계속하기도 한다. 고흐는 그림을 그렸고, 전혜린은 글을 썼으며, 장국영은 영화를 봤다고. 믿거나 말거나.

 

챔바가 길손이던 시절, 챔바는 엄마의 꿈에 검은 새끼 돼지 한 마리로 나타난 적이 있었다. '일어났을 때 웃게 되는 꿈'을 엄마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서였단다. 복권가게에 간 챔바의 엄마는 로또를 자동으로 할까, 반자동으로 할까 물어보려 챔바에게 전화했지만 챔바는 받지 않았다. 그녀도 자신의 죽음을 무사히 알릴 수 있을까.

 

편혜영 소설가는 "악몽의 형식이 아니라 귀엽고 사랑스럽고, 또 가장 복된 방식으로 만나는 형식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고독사와 청년의 죽음, 자살을 이렇게 사랑이 가득하게 쓸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고 평했다. 오정희 소설가는 "상상력의 무겁거나 우울하거나 칙칙하지 않은 점을 높이 봤다. 맑은 마음들이 만나지면서 깨끗하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작품"이라고, 구효서 소설가는 "죽음은 비극이자 슬픔인데 그게 발효돼 가볍고 탄산 같은 느낌까지 든다. 김멜라 작가 본인이 쓰고도 본인이 만족할 수 있던 소설이 아니었을까"라고 덧붙였다.

 

1983년생인 김멜라 작가는 2014년 단편 '홍이'로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소설집 '적어도 두 번'을 펴냈으며 지난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김유태 기자][ⓒ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