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⑥ 최진영 '차고 뜨거운'

메밀꽃 필 무렵 2021. 7. 30. 11:12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벗어나려 애쓰는 딸

 

엄마의 상처 대물림 끊고
다른 삶을 다짐하는 딸

"냉혹하고 모질어서
시원한 문장들로 가득

 

서정원 기자

입력 : 2021.07.29 17:02:51   수정 : 2021.07.29 18:13:15

 

22회 이효석 문학상

 

어른이 되려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세계의 이름은 부모다. 어릴 땐 든든한 품에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안온한 집은 독립을 가로막는 감옥이 된다. 눈물을 머금고 투쟁하며 부모라는 알을 깨고 나올 때 아이는 비로소 성장한다. 최진영 '차고 뜨거운'은 뜨거운 마음으로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차가운 머리로 엄마로부터 벗어나는 한 인간을 그린다.

엄마는 딸인 ''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의 최종 형태는 폭력이었다. 아빠의 안 좋은 면이 옮은 엄마의 사랑은 자식을 무시하며 자기 자리를 견고하게 다지는 방식이었고, 엄마의 모녀 관계는 '나는 불행하고 너도 행복할 리 없으니 우리 서로 껴안고 세상을 원망하며 같이 울자는 관계'였다. 불행을 모으며 안심하는 사람이 돼 버린 엄마는 ''의 결혼에도 비관적이었다. 부부생활이 실패할 경우만 말하며 남편 될 사람을 폄하하는 데 질린 ''"결혼을 준비하면서 엄마를 거의 없앨 뻔"한 지경까지 간다.


어쩔 수 없이 엄마 딸인 ''20대 초반엔 잘못을 되풀이했다. 서로를 고통에 빠뜨리는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하려 했다. "나만 나쁜 게 아니라는 것. 우리는 똑같이 엉망이고 구제불능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수렁에 빠져드는 ''를 건져낸 건 부모를 닮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이모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다. 어느 겨울 찾아간 이모 집은 ''의 집보다는 좁았지만 대신 형광등이 밝아 아주 환했다. 이모 부부의 눈빛은 따뜻했고 말투는 다정했으며 고맙다는 말을 자주 했다. 며칠 동안 머무르며 그들을 닮아갔던 기억은 끝내 남아 ''를 지탱한다.

결혼하고 딸 '태양'을 낳으며 충분히 잘 살고 있는데도 불행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엄마를 보며 ''는 깨닫는다. 엄마는 나를 보며 과거를 떠올릴 수 있지만, 나는 엄마의 모습에서 어떤 미래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걱정부터 하는 엄마에게 ''는 말한다. "나는 잘못될 생각부터 하기는 싫어. 나는 복직할 거고 태양이는 잘 클 거야. (중략) 특별한 날에는 외식도 하고 여행도 갈 거야. 나는 그렇게 살 거야, 엄마."

그럼에도 엄마는 상상의 힘으로 열세 살 때부터 ''의 세계에서 없애버린 아빠와는 다르다. 아빠의 세계에는 아빠만 있었지만 어찌 됐든 엄마의 세계엔 ''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엄마를 걱정했던 날들이 엄마를 없애려던 나를 가로막았고, 나만큼은 엄마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커다란 덫이 되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는 고백한다. 엄마를 넘어서면서도 엄마를 사랑하는 '차고 뜨거운' 상태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유전되는 트라우마의 사슬을 끊겠다고 결심하며 ''가 한계를 돌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구효서 소설가는 "냉혹하고 모질어서 차라리 시원한 문장들로 가득하다""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 하나하나의 힘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작가의 무기"라고 더했다.

최진영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 '팽이'로 등단했다. 장편 '구의 증명' 등을 썼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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