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 이야기

문학과 영화 사이 대화를 꿈꾸며

메밀꽃 필 무렵 2017. 8. 10. 15:27


문학과 영화 사이 대화를 꿈꾸며

출판사 `강` 대표·평론가 정홍수, 첫 산문집 `마음을 건다` 출간 
                    

                                                         •  김시균 기자입력 : 2017.08.01   17:31:43





홍상수 감독의 21번째 영화 '그 후'에서 문학평론가 봉완(권해효)이 운영하는 출판사 이름은 '강'이다. 이곳에 이제 막 입사한 아름(김민희)이 무심코 책장에서 꺼내 읽는 책은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이란 평론집인데, 영화평론가 허문영의 아름다운 평론들을 모은 이 책도 '강'에서 펴낸 것이다. 홍 감독이 이 영화 촬영 전 한나절 동행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람은 이 출판사 실제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인 정홍수(54). 지난해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이라는 평론집으로 제24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극중 봉완처럼 아직 해 뜨기 전 어둑할 무렵 집을 나와 출근한다는, "낡고 묵직한 가방을 짊어진 허름한 여행자"(허문영)인 그가 첫 산문집을 냈다.
2013년부터 최근까지 써온 글 67편을 묶은 '마음을 건다'(창비)이다.


문학계 소문난 영화광답게 그는 책머리에서부터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걸작 영화 '희생'을 언급하며 "영화는 내내 생생하게 울리는 빗소리처럼 세상의 숨은 소리로 가득하며, 세상의 어둠과 빛으로도 충만하다. 비탄과 신음 속일망정 작은 기적의 순간들과 함께하는 영화"라고 쓴다.


저 자신이 나고 자란 부산 범청동 철로변 풍경을 회상할 때에도 허우샤오셴 감독의 '연연풍진' '남국재견' 등에서의 철길 풍경을 떠올리며, "대학 시절 막막하고 힘이 들 때면 나도 모르게 혼잣소리로 읊던 시"인 김지하의 '비녀산'을 함께 되새긴다. 다르덴 형제 영화 특유의 현실에 대한 냉소적 관찰의 태도에서 "전에라면 느끼지 못했을 겸손한 현실주의"를 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을 감상하며 "사건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 전해주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근심과 통찰"을 읽어내는 그의 글들엔 영화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배어 있다.


특정 소설과 영화를 한 묶음으로 비교해 읽는 대목들도 흥미롭다. 황정은 작가의 중편소설 '웃는 남자'에서 택배 일을 하는 d의 "등을 꾹 누른" 예순 후반 남자가 "나 알지?"라고 말하는 부분과 홍상수 감독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민정의 저 당혹스러운 대사, "혹시 저 아세요?"를 함께 떠올리며 그는 "우리에게는 처음을 살 권리가 있다"라고 쓴다.


이 같은 글쓰기에는 아마도 "문학과 영화 사이의 비평적 대화가 깊어지길 기대해본다"는 저자 스스로의 개인적 바람이 녹아 있는 것 같다.

 정 평론가의 시선에서 두 예술은 "매체나 미학의 성격은 다르지만 현실의 창조적 제시, 타자성의 윤리 등 대화할 지점"은 무궁하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그런 그에게 이 같은 추천사를 건넨다. "분류와 판정의 논변이 아닌 경탄과 감사, 회한과 상념, 망설임과 부끄러움, 때론 분노와 속울음의 기행문. 그의 글을 나는 그렇게 느낀다. … 나로선 이런 글을 사랑하지 않기 힘들다."

[김시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