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효석과 작품

작가 이효석, 일본이 진주만 공습한 날 '반전소설'을 쓰다~

메밀꽃 필 무렵 2017. 1. 24. 12:11


[김성곤·방민호의 현대문학 명장면 20](9)대표적 서정 작가,

 일본이 진주만 공습한 날 ‘반전소설’ 쓰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가치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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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이 1939년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 시절 강의실에서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일 년 남짓 남았다. 2018년 2월9일부터 25일까지 개최된다 하니 준비가 바쁘다고 할 수 있다. 시국이 워낙 복잡, 다급한 요즘 이 올림픽도 그 영향 아래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대회는 다가올 것이다. 
이 올림픽을 생각할 때 더없이 귀중해 보이는 작가가 바로 이효석(1907~1942)이다. 그가 바로 평창 태생의 작가인 까닭이요, 일제시대 작가 가운데 이 작가만큼 서구에 대한 이해를 갖춘 작가도 드물기 때문이다. 빛바랜 문화융성, 하지만 평창 올림픽이 문화적 향취를 머금으려면 이효석이 어떤 작가며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효석은 우리 현대 소설사에서 자주, 빈번히 오해받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로 하여금 명성을 갖게 만든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이미지로부터 온다.

봉평장을 거두고 대화장으로 가는 보름 갓 지난 달빛 흐붓한 산길,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잡힐 듯 들린다 하고,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는 달빛에 한층 푸르게 젖었다 했다. 산허리 메밀밭에 갓 피기 시작한 메밀꽃 흰빛은 온통 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다 했다. 달빛은 푸른 것은 더 푸르게, 흰 것은 더 희게, 붉은 것은 더 붉게 맑은 원색의 수채화처럼 만들어 준다. 이 아름다운 밤의 산길을 세 사내가 외줄로 나귀를 타고 간다. 이야기가 아니 나올 수 없다. 이런 밤이면 나이 든 허생원은 늘 인생에 단 한번 있었던 낭만적인 ‘사랑’의 밤을 생각한다. 


                                                      

  <메밀꽃 필무렵>(조광, 1936·10).                                            부르스 풀턴교수의 영번역본 'Leaves of Grass' 

당시 발표된 지면(영인본)


‘메밀꽂 필 무렵’의 이야기가 너무나 서정적인 까닭에 사람들은 그를 현실에 별 관심 없던 작가로 생각한다. 시대적 고민을 함께하던 시절은 그가 유진오와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다니던 때 잠깐이었을 뿐, 곧 현실 도피의 서정적 소설로 나아간 것이라 해석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 어려운 시절에 ‘혼자’ 원두커피를 마시고, 낙엽을 태우고, 쇼팽을 친, 에고이스트에, 호사 취미를 즐긴 사람으로 치부된다.

어느 면에서 그는 분명 그러했다. ‘일요일’(삼천리, 1942·1)을 보면 그는 단편소설 한 편을 탈고한 기념으로 백화점을 거닐고 다방에 가 커피를 마시고 벗을 호텔로 불러 멋진 식사를 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금방 완성되었다 한 소설은 ‘풀잎’(춘추, 1942·1)이라는 것으로 작가인 이효석 자신과 가수 왕수복의 실제 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 것이다.

1940년 1월 아내가 복막염으로 뜻하지 않게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슬픔을 딛고 새로운 생활로 나아가기 위해 애썼고 그 와중에 왕수복을 만나게 된다.그런데 이 이야기의 ‘풀잎’이라는 제목은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의 시집 제목에서 빌려온 것으로, 이 시인은 미국의 민주주의 사상을 시적으로 대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답게 서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에 대한 관찰 및 경험에서 우러난 시들을 쓴 것으로 평가된다.
이 시집 제목을 빌린 소설에서 이효석 자신을 빼닮은 주인공 준보는 옥실(=왕수복)을 위해 휘트먼의 시를 읽어주기도 하는 바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시구를 포함하고 있다.

“나는, 여성의 시인이며, 동시에, 남성의 시인이니라 

나는 말하노라, 여자됨은, 남자됨과 같이, 위대한 것이라고 

 또, 말하노라, 남자의 어머니됨같이, 위대한 것은 없노라고” 

휘트먼의 시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에서 가져온 이 시구에서 유난히 시선을 끄는 것은 “남자의 어머니됨”에 대한 예찬이다. 시적 화자는 여성성을 남성성만큼이나 귀한 것으로 제시하는 데서 더 나아가 남자의 어머니됨, 즉 남성이 품을 수 있는 모성애적 사랑을 지극한 위대함이라 노래한다. 


                                                         


                           1938년 4월 이효석 가족의 모습(왼쪽부터 부인 이경원, 이효석, 차녀, 장남, 장녀).

이효석은 채만식처럼 자신의 원고 탈고일을 즐겨 밝혀 놓았던 것 같다. 그가 ‘풀잎’의 원고를 쓴 때는 1941년 11월의 마지막 일요일, 즉 11월30일이었고, 다시 이 ‘풀잎’을 마친 날의 이야기가 담긴 ‘일요일’을 쓴 것은 1941년 12월8일, 즉 일본이 미국을 향해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날이었다.
 태평양 건너 하와이에서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던 날 이효석은 미국의 큰 시인의 시구가 담긴 단편소설을 완성한 날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때 ‘풀잎’에 나오는 준보와 옥실의 생활은 예사롭지 않다. 

그들은 방공연습이 며칠이고 계속된 밤거리, 등화관제가 내려진 평양의 골목을, 통행을 막는 고함소리가 들려오는데도, 유유히 산책해 나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또 그러면서 생각한다.


“헐어진 가정을 쌓아서 새로운 생활을 설계해야 하고 고독을 다스려서 보다 높은 사업을 이루어야 함이 인간경영에 주어진 영원한 과제인 까닭이다. 자멸의 길을 버리고 창조의 길을 찾아야 함이 인류의 행복을 가져오는 까닭이다”라고. ‘풀잎’은 그러므로 한 편의 반전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이 자기 자신과 함께 조선인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전쟁을 시작할 때 이효석은 인간은 “자멸의 길을 버리고 창조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전쟁 대신에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소설에서 쓴 것이다.  




방민호 교수 서울대 문학평론가 방민호


이효석은 어떻게 이런 구상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할 때 떠오르는 작품 군이 있다.
바로 ‘산’(삼천리, 1936·1), ‘들’(신동아, 1936·3), ‘소라’(농업조선, 1938·9) 연작이다. 이 세 작품은 ‘메밀꽃 필 무렵’과는 그 명성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취약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작품들을 빼놓고 ‘메밀꽃 필 무렵’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이 작품들에서 이효석은 자연의 섭리를 떠난 인공적 삶, 제도적 삶, 지배와 제재와 억압의 사회를 비판하면서 나무와 같은 삶(‘산’), ‘들판에서의 삶(‘들’), 풋볼처럼 필연에 얽매이지 않는 삶(‘소라’)을 역설하고 있었다. 이 작품들의 존재를 염두에 놓으면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의 하룻밤 사랑,

 그 사이에서 난 것으로 암시되는 동이와 허생원의 아름다운 밤길은 인간의 삶에 깃들인 어떤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즉 인간은, 인류는 제도와 법 같은 인공의 울타리를 넘어서도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간다. 그러니 자연의 섭리와 본성을 따라 살라. 폭력과 전쟁 없는, 사랑의 삶을 살라. 여기서 ‘메밀꽃 필 무렵’과 ‘풀잎’은 하나로 합쳐진다. 이효석은 서정소설의 작가일 뿐 아니라 사랑과 반전 사상의 작가였다.

                                                                                              

                                                                                                -이효석문학재단 (경향신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