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2016년 제17회 이효석문학상 후보작 지상중계 -6- 이장욱

메밀꽃 필 무렵 2016. 7. 27. 15:12



[이효석 문학상]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가, 도통 알 수 없는 뒤틀린 세상

편의점 알바생의 죽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애매한 경계 거부하고 싶은 진실 그려

■ 본심 진출작 ⑥ 이장욱 '최저임금의 결정'

   새벽 4시. 권총을 든 한 남자가 편의점 문을 연다. 야멸찬 분노의 눈빛이다. 남자는 총구를 들이밀며 편의점 사장에게 복수를 감행한다. 사장이 저지른 잘못은 간명하다. 한 여학생 알바생을 성추행했고, 이어 도망치던 알바생은 마을버스에 치여 즉사했다. 남자는 이 알바생의 애인이다. 권총 앞에서 사장은 입을 뗀다. "자네를 어디선가 보았다고. (중략) 알지. 알고 말고. 자네가 누군지도 물론." 편의점 사장이 털어놓은 밀담은 충격적이다. 남자는 애인이 아니라 스토커였고, 성추행은 애초에 없었다. 아, 이 모든 게 망상인가.


소설가 이장욱(48)은 적의에 찬 복수의 서사를 순식간에 정신착란의 디스토피아로 전복시켰다. 제17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최저임금의 결정'('세계의문학' 2015년 가을호 발표)을 펴봤다. 복수는 정의를 위한 조치다. 주인공 '나'는 1인칭의 목소리로 편의점 사장을 호시탐탐 미행하며 살해를 계획한다. 죽여야 할 편의점 사장은 현재 시점으로 눈앞에 보이는데 죽어버린 애인은 과거에만 머문다. '나'는 열흘 낮과 열흘 밤을 반지하 방에서 복수를 꿈꾼다. 범인(犯人)을 응징하려 남자는 자신이 스스로 범인이 되려 한다.


소설은 그러나 2인칭이라는 묘한 화법으로 쓰였다. 편의점 사장인 '당신'에게 하는 이야기가 소설의 대부분을 채운다. 동해안 소도시에서 태어나 4년제 대학에 들어간 뒤 중매로 결혼해 아이를 낳고 불황에 명예퇴직한 뒤 편의점 사장이 된 '당신'을 둘러싼 서사가 펼쳐진다. 흉악한 범인인 줄 알았더니, 누가 봐도 범인(凡人)이다.


 누가 악인지, 또 누가 평범한지 알 수 없는 뒤틀린 세상을 이 작가는 단편에서 비유했다. 작가는 편의점 사장의 입을 빌려 이렇게 쓴다. "이 골목이 저 골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게 또 이 세계 아니겠나." 왜 제목이 '최저임금의 결정'일까. 알바생에게 지급된 최저임금은 이 작가가 썼듯 "존재의 최저 수준, 존재의 밑바닥"이다. 최저임금을 결정(決定)하는 건 알바생이 자기 존재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확인 받는 일과 등가를 이룬다. 편의점 사장의 지질한 악의는 어떤 존재를 몰락으로 내몰곤 하다. 작은 악의가 폭력으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사소한 악의가 존재의 기반을 허물어뜨린다.


글쓰기에 대한 이장욱 소설가의 고뇌도 문장에 어른거린다. '나'는 자신이 스토킹했던 알바생의 블로그에 알바생이 죽은 뒤에도 계속 글을 써 왔다. "단지 불안과 외로움 때문에 쓰는 글 말이네. 어쩌면 세상의 글들이 대개 그런지도 모르겠네만"이란 편의점 사장의 전언은 이 작가의 심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심사위원장인 오정희 소설가는 "이장욱 소설은 세련되고 날렵했었는데 이번 단편에서는 정면으로 한 세계를 향해 대들어보겠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강렬했다"고 평했다.


백지연 문학평론가는 "소설적 변화를 이끌어 내보려고 한 지점이 감지된다"고 평했다. 1968년 출생한 이장욱 소설가는 2005년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1994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아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고백의 제왕'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을 썼고,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천국보다 낯선'을 남겼다.

 

김유태 기자 입력 : 2016.07.26 17: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