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2016년 제17회 '이효석문학상' 대상후보작 지성중계 -5-

메밀꽃 필 무렵 2016. 7. 25. 12:17


[이효석 문학상]

 이야기와 인간은 늘 함께 해온 동반자

조작된 야구 중계에서 서사 본질에 질문 던져"음모론 등 사회적 서사,
본심 진출작 ⑤ 박형서 '개기일식'

 







개기일식은 예사롭지 않은 현상이다. 태양과 달과 지구가 일직선에 놓이면 세상은 어두워진다. 소설가 박형서(41)는 달이 태양을 가려 낮이 밤으로 뒤바뀌는 '왜곡'에 주목했다. 제17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개기일식'은 이 세상의 모든 서사들이 품고 있는지도 모를 어떤 음모론을 겨냥한 우화로 읽힌다.


주인공 성범수가 본 야구중계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2사 만루, 풀 카운트, 3점 뒤진 채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역전 만루홈런이 터진다. 나라를 뒤흔든 사건을 실시간으로 본 성범수는 이 역전드라마가 사실은 조작이고, 이 나라의 모든 '사연'을 총괄하는 '사연청'의 의도적 음모라고 확신한다. 사연청은 국가의 가상기관이다. 사연청 고위 공무원인 친구는 성범수를 만난 자리에서 대역전극이 정부 내 쿠데타를 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도한 조작이라고 실토한다. 오랜 친구는 그 자리에서 대학시절 상반된 철학을 가진 두 은사님을 기억한다. 이야기를 꾸며 독자에게 각성을 주라던 최 교수, 확신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서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 교수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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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 소설가는 두 교수의 상이한 작법 강의로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비유해낸다. 소설 연극 드라마 영화 등의 공통분모는 서사, 즉 이야기다. 형식이 달라졌어도 서사는 인간과 동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때로 잘 짜인 서사는 인간에게 감동이나 교훈 또는 흥분을 안기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확신보다 질문하기 위해 쓰였다. 마구잡이인 현실을 정돈하고 배열하는 게 서사의 본질이어야 할지, 현실 그대로를 거울처럼 반영해 그대로를 보여주는 서사가 바람직한지 소설은 묻는다. 따지고 보면 '개기일식'은 두 개의 트랙으로 나뉜 문학에 관한 우화로도 읽힐 수 있다. 최 교수로 상징되는 옛 시절의 문학은, 때로 읽는 이에게 뭔가를 안겨주는 서사로 무장하곤 했다. 반면 유 교수로 비유되는 시절의 문학은, 읽는 이와의 공감이 주된 목적으로 함께 고민해보려는 서사로 변화했다. 어지럽혀진 현실을 재구성해 독자를 만났던 문학은 한때 그 역할을 해냈고, 지금도 명맥을 유지한다. 시간이 지나 질문을 던지는 이 시대의 문학도 나름 지금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중이다. 두 가지 갈림길을 걸어가는 서사의 방식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보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박형서가 설정한 우화의 세계는 경이로울 정도다. 무겁고 굵직한 주제 이면에 깔린 박형서 소설가 특유의 유머는 단편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이어진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읽을 수 있다.





 심사위원 이수형 문학평론가는 "서사(이야기)의 존재론에 관한 우화적인 소설"이라며 "다종다양한 음모론들을 비롯해 사회에 횡행하는 많은 서사들 사이에서 '개기일식'은 그런 사실을 폭로하고 다른 길을 모색한다"고 평했다.


 심사위원장 오정희 소설가는 "박형서 소설에 대한 변화가 감지되는 재미있는 소설"이라며 "서사의 흐름에 대한 변명을 독특한 방식으로 해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1972년생인 박형서 소설가는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 '핸드메이드 픽션' '끄라비'를 썼고, 장편소설로는 '새벽의 나나'를 남겼다. 대산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받았다.


김유태 기자 입력 : 201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