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 이야기

소설가 전성태(2015년 제16회 이효석문학상수상자)작품 '태풍이 오는 계절'

메밀꽃 필 무렵 2016. 4. 6. 12:34

소설가전성태 ‘태풍이 오는 계절’

김욱의 그 작가 그 작품(22)

해체된 농촌·무기력한 농부의 삶… ‘푸른 봄’ 올까

중학교 중퇴후 서울 상경했던 주인공…온갖 쓴맛 보고 고향으로 내려와
태풍피해보상금이라도 챙겨보려 헌집 때려 부쉈는데 태풍은 무소식
5남1녀의 다섯째로 태어난 작가
등단 이후 20년 넘게 농촌이야기 고수…자라나지 못하는 농촌의 청춘들 보듬어


          

  인물 쪽으로 돌아가면 난 참 할 말이 없어진다. 종암이는 눈이 안 좋아서 그렇지 깎은 밤톨마냥 허여멀쑥한 게 논두렁 볕을 쬐고 자란 여기 물색은 아닌 것 같다. 그에 비하면 나는 무쇠솥 밑창 같은 얼굴에, 그 빛깔만큼이나 깊은 여드름 구멍도 숭숭 많다. 봉자년의 말에 따르면 너무 서둘러 배운 담배 탓이란다.

 하긴, 나도 잘하는 게 요것 말고도 또 있긴 하다. 용접봉도 댈 줄 알고, 담벼락쯤은 우습게 미장을 하고, 삼동네에 묻어낸 보일러는 여태 뒷말이 없다. 그것뿐이냐. 근래에는 석재 공장에서 돌도 자르고 갈았다. 허나 그게 무슨 대순가. 서른 살을 눈앞에 차려 놓고 이 촌구석에서 썩고 있는데. - <태풍이 오는 계절> 중에서

   소설가 전성태(1969~ )는 특별하다. 하루에도 수십번 뒤바뀌는 세상에서 그는 지나간 어제를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두엄내가 진동하는 옛 모습 그대로의 농촌, 발전도 없고 미래도 안 보이는, 그래서 청춘들에겐 그저 쉰내 풍기는 과거로 치부될 뿐인 해체된 농촌과 무기력한 농부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세상이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는 해묵은 농촌의 이야기를 전성태는 등단 이후 20년 넘게 고수해왔다.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원형이 농촌에 있기 때문이며, 각박해진 현대사회의 반인륜적인 모습의 원흉이 농촌이라는 뿌리를 상실한 현대인의 방황과 슬픔에서 비롯되었다고 굳게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성태가 그리는 소설 속 농촌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듣던 옛날이야기처럼 포근하지만은 않다. 오늘의 농촌이 결코 아름답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다.

 <태풍이 오는 계절>의 주인공 ‘나’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상경했다가 온갖 쓴맛을 본 후에 다시 지긋지긋한 고향으로 내려온 30대 농촌 총각이다. 고향에 돌아와보니 십수년이 흘렀건만 변한 게 없다. 고향집의 초가지붕도 그대로, 농사지어선 세끼 먹고사는 것도 감수가 안돼 날품을 팔거나 읍내 공장에서 막일이라도 해야 하는 답답한 현실도 그대로다. 변한 게 있기는 하다. 친구들이 죄다 고향을 등져 젊은 사람 찾기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같고, 팔팔했던 아버지들이 밭고랑 하나 가르는 데 반나절이 걸리는 노인네가 되었다는 것 등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태풍 피해보상금이라도 한몫 챙겨 뭐라도 해볼 요량으로 태풍이 거세게 몰아친다는 예보 날짜에 맞춰 헌 집을 때려 부쉈는데, 온다던 태풍이 꼬리를 내리는 바람에 보상금은커녕 잔머리를 굴려 나랏돈을 빼먹으려 한 염치없는 젊은 놈 소리를 듣고야 만다.

   나는 손바닥에 밭은 침을 뱉고 해머 자루를 움켜쥔다. 남의 눈 피해 덧나지 않게 하기에는 맞춤한 시각이다. 영감님도 잠이 들었는지 들창에 서렸던 텔레비전 푸른 기운도 가셨다. 툇마루 산기둥을 툭툭 두드리자, 의외로 들썩인다. 내처 해머를 머리 위까지 치켜들고 내리쳐 본다. 대번에 서까래받이가 찌그둥 기울고 호박이 덩굴째 쏟아져 허공에서 대롱거린다. 집을 빙 돌아가며 홑벽이며 기둥, 골골샅샅이 쳐본다. 물을 먹어 무거워진 이엉은 한 뭉텅이씩 빠지지만 흙벽은 맞은 자리만 털릴 뿐 넘어갈 기미가 없다. 기운 쪽으로 털어 내면 땅바닥으로 주저앉을까 싶어 뒤란 모퉁이로 들어섰으나 여차하면 그 비좁은 데 묻혀 무덤 삼기 십상이겠다. 

- <태풍이 오는 계절> 중에서

  지금은 나로우주센터가 들어선 전남 고흥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중학교 시절까지 성장한 전성태는 5남 1녀의 다섯째였다. 유년시절 농사에 바쁜 부모를 대신해 막내를 돌보느라 아홉살이 되어서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또래들이 학교에 간 사이 그는 동생에게 동냥젖을 물리기 위해 동네 아주머니들을 찾아다녔고, 몸이 아프면 개똥과 산오이풀·지네·개구리 등을 달여 마셨다. 그때의 경험이 가난한 어린 소년을 이야기꾼으로 만들었다. 삭막한 콘크리트와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는 피어날 수 없는 희망과 위로의 노래를 만들었다. 그 노래로 병든 뿌리처럼 자라나지 못하는 농촌의 청춘들을 보듬어주고 있다.

 여전히 많은 수의 농촌 젊은이들은 낙후된 세월에 머무른 채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갈 곳을 잃고 유랑하는 청춘이다. 그들의 공허한 마음을 붙잡아주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며, 그들에게 공동체의 미래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봄바람 대신 ‘황사’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이때에 과연 우리의 자녀들이 농촌이라는 뿌리에서 푸른 봄을 만끽하는 날이 다시금 찾아와줄지 두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