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내 작업실…북적임 속 삶 온기느껴"
첫 에세이집 `빈틈의 온기` 윤고은 소설가 인터뷰
"하루 4시간씩 출퇴근
이동하면서 영감 얻죠
일상 빈틈 속 따뜻함과
너그러움 얘기하고파"
서정원 기자
입력 : 2021.06.10 17:23:14 수정 : 2021.06.10 18:06:53
소설가 윤고은(41)은 하루에 4시간을 출퇴근길에 쓴다. 진행자로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을 위해서다. 9시 30분 전에 집을 나서면 가장 가까운 역은 걸어서 15분 거리의 미금역. 여기서 목적지인 주엽역까지 지나는 역만 37개소다. 때가 착착 맞으면 1시간 반 만에 도착하지만 보통은 좀 더 걸린다. 퇴근할 땐 같은 길을 거슬러 돌아온다. 이렇게 왕복 120여 km의 대장정을 일주일에 4번씩, 2년 가까이 반복해오고 있다.
윤고은의 첫 에세이집 ‘빈틈의 온기’(흐름출판)의 8할은 이 출퇴근길이 썼다. 경기 남부에서 서울을 가로질러 경기 북부까지 가는 열차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한 모든 것들이 책 속에 알알이 박혀 있다. 최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작가는 “이동하는 일상 속에서 신선한 자극과 소설의 영감을 많이 받는다”며 “책도 보고, 잠깐 졸기도 하며, 또 딴 생각도 맘껏 할 수 있는 지하철은 내겐 이동하는 작업실”이라고 했다.
장시간 여정을 기꺼이 감수하는 건 운전엔 영 젬병인 탓이다. 차를 타면 집에서 방송국까지 차로 변경 없이 오고 갈 수도 있지만 “시동을 걸 때마다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리는 것 같고, 경적이 으르렁 울리면 알아서 쪼그라들게 된다”고 한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차로 대신 철로를 택했고, 지하철은 현재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동수단이다. 책에도 이 얘기가 한가득 나온다. 4개 챕터 중 하나를 오롯이 할애했다. 옥수역과 압구정역 사이 저녁놀 풍경, 텅 빈 열차에서 하필 내 옆에 앉는 사람 얘기 등 지하철 통근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담겼다.
‘타고난 유목민’ 윤고은은 ‘장거리 이동’인 여행도 끔찍이 좋아한다. 25살 첫 여행 뒤로 1년에 한 번 이상씩은 꼭 밖으로 나가, 유럽·일본·중국·동남아시아 등 웬만한 곳들은 다 경험해봤다. “이곳저곳 옮겨 다닐 때 느껴지는 들뜸·긴장·불편이 매력적”이란다. 여행은 대표작 ‘밤의 여행자들’ 소재이기도 하다. 재난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재난여행’ 상품을 둘러싼 음모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해 영문으로도 번역돼 ‘가디언’ ‘디 애틀랜틱’ 등 유수 외신에서 호평 받았고, 올해는 영국추리작가협회에서 시상하는 대거 상 번역소설 부문 최종 후보로 지명돼 다음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대거 상은 미국의 ‘에드거 상’과 쌍벽을 이루며 전세계 추리문학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이런 성취와 대비되는 인간적인 ‘빈틈’들도 책에서 볼 수 있다. 라디오에서 카뮈 ‘이방인’을 낭독하다 ‘한낮의 땀과 태양’을 ‘한낮의 땀과 때’로 읽는가 하면, 시간에 쫓기다 치약 대신 틀니 부착재로 이를 닦기도 한다. 윤고은은 이런 실수들조차 “사랑스럽다”며 아낀다. “과연 빈틈 하나 없이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런 삶은 오히려 밀폐용기처럼 꽉꽉 막혀서 재미없지 않을까요? 삶의 빈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따뜻함과 너그러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윤고은은 “모두 아홉 명의 ‘나’가 내 안에 살고 있다”고 소개한다. 1번 ‘미래의 나’, 2번 ‘착각하는 나’, 3번 ‘기록하는 나’, 4번 ‘겁이 많은 나’, 5번 ‘일찍 일어나는 나’와 같은 식이다. 6번 ‘욱하는 나’, 7번 ‘행복을 표현하는 나’, 8번 ‘아침식사를 챙기는 나’, 9번 ‘추진력을 가진 나’도 있다. 그 중엔 맘에 드는 자신도, 그렇지 않은 자신도 있지만 윤고은은 이 모두를 감싸 안는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물으니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각각의 윤고은들 이름을 불러주며 어느 하나도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꼭 붙들어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서정원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매일경제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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