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2019 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⑥ 최은영 `일년`]

메밀꽃 필 무렵 2019. 8. 2. 15:52



[2019 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최은영 `일년`]


인간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독특한 대답

`27세 동갑내기` 정규직과 인턴
유대하던 마음 `계급차`로 훼손
성원권 획득 못한 젊은 세대들
"솔기 하나 없는 완벽한 바느질,
여성들의 슬픈 현대사회 적응기

 

                                                                김유태 기자

                                                                 • 입력 : 2019.08.01 17:44:52   수정 : 2019.08.01 20:39:08

20회 이효석 문학상

 

  

 

마음의 살갗에 파인 상처에 가닿으려는 연약한 응시다. 우리 시대의 방임된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불완전한` 세계의 자리와 `불공평한` 우리의 처지를 재배열한다. 최은영 소설가(35)의 애처로운 시선은 우리 시대 여성의 마음과 공명하며 호응을 얻었다. 그것은, 어떤 연민이란 단어로 축약될까. 분투하는 생의 자리로 향하려는, 따스하고도 정확한 그런 연민.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정규직원 지수와 인턴 다희는 스물일곱 동갑내기다. 본인의 어시스턴트로 배치된 다희를 조수석에 태우고 지수는 풍력발전소 현장을 오간다. 인안대교를 건너며 상대의 이야기에 몰두하던 지수는 직장 내에서 부득이 발생하는 `신분`의 차이로 사소한 오해가 생겨 미지근한 이별을 겪는다. ()가시적인 우리 시대의 계급, 무력한 수용, 고통의 정면, 우정과 단절이란 주제가 꽤 촘촘하다.

초면의 다희와 지수를 묶어버리는 감정은 고통이다. 주변인을 상실해본 각자의 경험은 인안대교를 건너며 한 방향을 쳐다보는 두 사람의 흐릿하고 희미한 감정을 두텁고 단단한 감정으로 변화시킨다. `마주한 현실에서 그녀를 몰아내는` 인안대교 풍경은 현실 바깥으로 가는 피안이 된다. 운전석과 조수석은 비현실적인데 잘 보면 둘의 대화만이 되려 주변에서 괴리된 `진짜 마음`에 가깝다.

성원권을 획득하지 못한 다희와 성원권을 박탈 당하지 않으려는 지수에겐 영원하지 못한 각자의 `자리`가 존재한다. 지수가 다희를 부정한 이유도, 다희가 입을 다무는 이유도, 저 자리를 얻으려는 쟁투 때문이겠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명저 `사람, 장소, 환대`에 기대어 본다면 `순수한 우정`이 상실되고, 끊임없이 `신원`을 확인하며, `사람`을 연기하고 수행하는 투쟁을 작가는 예리하게 설계했다.

완강한 성원권을 획득하는 바로 그 순간, 저자는 지수에게 렌즈를 바짝 들이댄다. 무례한 김상무에게서 `고졸 특채 동기와 지수 씨는 다르다`는 귀띔을 들은 지수는 거울을 보는데, 억지웃음은커녕 안도의 미소다. "그녀가 본 건 기쁨과 안도가 스민 진짜 웃음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추한 가능성을 알아보았는지도 몰랐다." 반사된 표정은 추하나 그 추함은 생존 때문이겠다.

이내 울리기 전에, 이미 울어본 마음이다. 오직 최은영만이 가능한 `정확한` 문장은 독자를 껴안는다.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잠근다." 애썼다가도 지쳐버린 순간들이 모여 삶을 구성한다고도 말한다. "고통스러웠지만 살아졌고, 그녀는 살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살아진다. 그러다 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심사위원 정여울 평론가는 "솔기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바느질이다. 친해질 가능성이 높던 두 인물의 관계가 지위의 차이로 어떻게 멀어지는가, 궁극적으로 인간관계란 무엇인가란 질문의 독특한 대답이다"라고 평했다. 구효서 소설가도 찬사했다. "회사에서 살아남고자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른바 사회를 향한 생존법이 생겨버린 두 여성의 `슬픈 현대사회 적응기`로 읽었다."

1984년 경기 광명시에서 태어난 최은영 소설가는 2013년 중편 `쇼코의 미소`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등단작이 표제작이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가 거대한 호응을 얻으며 주목 받았고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도 호평을 받았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2019 이효석문학상 지상중계 끝>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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