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2019 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③ 손보미 `밤이 지나면`

메밀꽃 필 무렵 2019. 7. 26. 11:11



[2019 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손보미 `밤이 지나면`]

언어를 상실한 인간이 다시 말을 얻기까지

10세 소녀 ``의 내면 고백
인간에게 `무서운 것`이 뭔지
우연·필연의 관계 성찰케 해
"귀엽고 도발적인 성장서사

                                            

                                                           • 김유태기자 입력 : 2019.07.25 17:06:14

 

20회 이효석 문학상


[사진 제공 = 정재혁]



디스토피아의 색()은 늘 검었다. 어두운 천국도 밝은 지옥도 없으니, 검음은 인간의 두려움과 맞닿아 있는 색이었다. 그래서인지 밤에는 모두 침묵한다. 손보미 소설가(39)의 단편 `밤이 지나면`은 밤의 세계를 기저에 두고 발화와 침묵, 상실된 언어, 인간의 이면, 두려움과 나아감을 고민한다.

데뷔 직후부터 주요 문학상을 싹슬이하며 인정 받았던 그의 기묘한 현실감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부모의 사고로 외삼촌 집에 위탁된 열 살의 ``가 동네에서 소문난 `정신 나간 여자`에게 자발적으로 납치되며 벌어지는 내면적인 이야기다. 어딘가 기형적이거나 이형적인 외숙모와 외삼촌, 반 친구 영예은은 ``의 침묵을 가속화한다. 음울하지만 치유에 가까운 샤머니즘 요소가 소설 곳곳에서 배치돼 있어서 기이하고 신비롭다. 왠지 자전적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다.

`말을 하지 않음`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언어는 형상을 만드는 일이고, 형상은 욕망을 닮았을진대, 말하지 않음은 욕망이 없는 상태, , 죽은 상태에 가깝다. 부모를 비자발적으로 `잃은` 트라우마로 침묵하던 ```정신 나간 여자`를 만난 현실과 침묵의 세계를 오간다. 말을 시작하기 전의 인간도 이미 언어에 구속돼 있다는 명제를 떠올리면 ``는 그제서야 인간 자격을 획득한다.

`정신 나간 여자`만이 ``의 입을 열게 만든다. 예지몽을 꾼다고 알려진 여자의 가게, 그곳에서도 여자의 작은 방은 ``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밤의 세계를 연상케 만든다. 밤은 낮의 일상이 제거된 세계이며,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마친 자리다. 빨간색 티코로 떠난 둘만의 `자발적 납치극`은 빗물에 미끄러져 실패하지만 가드레일을 들이박는 사고는 어둠에 대한 ``의 인식을 변화시킨다.

소설은 존재와 비(), 지금과 나중의 문제로 주제를 확장한다. 사고 차량에서 나온 여자와 ``의 대화가 그렇다. "저 소리 들려? 들개가 우는 소리야. 들개는 너를 죽일 수도 있어. 너가 죽게 된다면 그건 지금이 밤이라서가 아니야. 그건 너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있어서야." 결국 `지금, 여기`란 주제는 우리가 알지 못하던 우연의 발생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진다.

우연과 필연의 그물망이 곧 삶이라면 기억의 문제도 삶의 중요한 문제다.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외삼촌은 말한다. "내는 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는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아니까. 그런 시절이 없었으면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다." 작가가 제목에서 가정형으로 물어보듯 모든 밤이 지나면 `진짜 무서운 것`은 사그라질까. 아니면, 더 깊어진 밤이 오고야 말까.

심사위원 정여울 평론가는 예리하게 호평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순수해지는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도발적이면서도 귀엽게 느껴지는 성장 서사에서 심리적인 면을 세밀하게 포착했다." 윤대녕 소설가도 극찬했다. "불안감을 해소하려 주술사와 내통하며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는 와해될 수밖에 없다. 삶의 신화적 측면을 제공한다는 매력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


 손보미 소설가는 1980년생으로 경희대 국문과에서 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 문예지 `21세기문학` 신인상에 단편 `침묵`,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담요`가 당선됐다. 등단 초기부터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싹슬이했다.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장편 `디어 랄프 로렌`, 중편 `우연의 신`을 썼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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