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 이야기

[오늘 그사람] ~ 이효석, '유령'과 '메밀꽃' 사이

메밀꽃 필 무렵 2018. 11. 21. 13:39


[오늘 그사람]이효석, '유령' '메밀꽃' 사이

 

최종수정 2017.05.25 14:03 기사입력 2017.05.25 09:53

 

 

1942 525 세상 떠난 작가 이효석의 삶과 문학

이효석 동상(사진=이효석 문학관 홈페이지)

이효석 동상(사진=이효석 문학관 홈페이지)


25일은 소설가 이효석이 세상을 떠난 75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1942 525 뇌막염으로 35세의 이른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대표작이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단편소설로 꼽히는 '메밀꽃 무렵' 6 전인 1936 발표됐었다. 그는 이보다 8 전인 1928 '도시와 유령'으로 등단했는데 데뷔작과 그의 대표작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8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효석이 처음부터 '메밀꽃 무렵' 같은 향토성 짙은 작품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당시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도시와 유령' '조선지광' 발표하며 등단했다. 경성제국대학을 다니던 스물한 살의 이효석은 초기의 작품들을 통해 '동반작가' 활동했다. 동반작가는 사회주의 예술가 단체인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작가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

데뷔작 '도시와 유령' 동반작가 이효석의 면모를 확인할 있는 소설이다. 그는 소설에 당시 무산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았다. 내용은 이렇다. 미장일을 하는 '' 일정한 거처도 없이 동대문이나 동묘 등에서 노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동료 김서방과 술을 마시고 동묘 처마 밑에서 자러 갔는데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아 동묘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도깨비' 보고 혼비백산해 도망친다. 다음날 도깨비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그곳에 가니 자동차 사고를 당해 구걸을 다니지 못하는 거지 모자가 있었다. '' 주머니 속의 돈을 모두 주고 뛰어나온다
.

이효석은 단편에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도시 노동자의 일상에 끼어든 거지 모자의 충격적인 삶을 묘사했다. 이를 통해 도시 빈민의 비참한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그러면서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읽는 이들의 참여와 투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소설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다. "두말할 없이 이런 비논리적 유령은 결코 있어서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유령을 늘어가지 못하게 하고, 아니 근본적으로 생기지 못하게 것인가? 현명한 독자여! 무엇을 주저하는가. 중하고도 문제는 독자의 자각과 지혜와 힘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 

이런 그의 작품세계가 변하기 시작한 시점은 1933 '구인회' 가입부터라고 한다. 구인회는 당시 이름을 떨치던 작가들의 모임이었는데 이상, 박태원, 유치진, 정지용, 김유정 등이 구인회 출신이다. 이효석은 구인회 가입을 전후로 순수문학으로 돌아서 향토성 짙은 주제에 몰입했다고 한다. 이효석은 자신의 고향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흐드러지게 메밀꽃을 이렇게 묘사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장돌뱅이 허생원과 동이가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칠십리 밤길을 달빛 아래서 걷는 장면이다.

 

이효석의 데뷔작과 대표작은 다른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 그가  '도시와 유령'에서 지적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그리고 장돌뱅이들의 삶과 애환을 시적인 언어로 그려낸 '메밀꽃 무렵' 장면을 찾아 매년 메밀꽃이 피는 9월이면 봉평 일대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작가 이효석 선생께서 '도시와 유령'으로 데뷔하신지 90주년을 맞는 뜻깊은 제19회 이효석문학상시상식이


 이효석문학재단과 주관/주최인 매경그룹사옥 강당에서 102()에 있었읍니다.


권여선 작가의 '모르는 영역'이 대상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