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 본심 진출작 ⑤ 김희선 `공의 기원`

메밀꽃 필 무렵 2018. 8. 24. 16:58

[이효석 문학상] 축구공을 추적하며 꾸며낸 19세기 조선과 영국의 미시史
   
        산업혁명 거친 영국이 만든 공 하나가 조선에 건너 갔다면?
    재기발랄한 작가의 상상력

                     

                                           김규식 기자입력:2018.08.2316:33:22 수정:2018.08.23. 20:01:10


■ 본심 진출작 ⑤ 김희선 `공의 기원`




  역사학 가운데 `미시사(微視史)`라는 갈래가 있다. 미시사는 사물 혹은 개인 및 특정 집단을 개별적으로 포착한다. 그동안 역사학은 거시적 흐름을 포괄하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역사를 구성하는 개별 주체의 역량을 과소평가할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조선 중기 머슴 돌쇠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돌쇠는 같은 노비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나름의 삶을 살았겠지만 역사책에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돌쇠의 삶을 추적한다면 역사 전체를 꿰뚫을 수 있기도 하다. 돌쇠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양인이 됐다면, 돌쇠를 추적할 때 조선 후기 신분제 붕괴 과정을 손바닥 보듯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또한 이 같은 미시사 방식을 채용할 수 있다. 물건 하나를 추적해 허구의 얘기를 만들면서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방식이다. 김희선 소설가(46)의 `공의 기원`(문학의 오늘 2018년 봄호)은 축구공 하나를 추적하면서 조선과 영국 역사를 복원한다. 물론 축구공을 둘러싼 얘기는 모두 허구다. 하지만 김희선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영국에서 만든 축구공이 조선으로 넘어갔다고 가정해 얘기를 풀어나간다. 굳이 이 작품을 규정한다면 `축구공의 허구적 미시사`로 부를 만큼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공의 기원`은 다소 황당한 설정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1882년 제물포에 살던 소년은 영국 군함을 타고 온 수병에게 축구공 하나를 받는다. 소년은 축구의 매력에 빠져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먹고살기 바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물론 이 축구공은 영국의 기술로 만들었다. 토머스 굿맨이라는 사업가가 소가죽으로 만든 축구공 안에 고무를 넣어 탄성을 높인 것이었다. 김희선은 축구공을 만들 때 이뤄진 아동 노동의 그림자를 슬쩍 끼워넣고, 인도로 공장을 옮기는 굿맨의 사업 수완으로 제국주의를 언급하기도 한다. 김희선은 이 작품에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마르크시즘까지 끼워넣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서술하지는 않는다. 조선과 영국, 인도를 오가며 거대한 역사를 말하는 듯하지만 어디까지나 재미난 얘기에 머무른다. 축구공에 천착한 제물포 소년이 끝내 32장의 오각형과 육각형 가죽으로 만드는 혁신을 이루는 과정은 재기발랄해 웃음마저 준다. 물론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역사를 다루지만 결코 과거 얘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언급한 문제는 모두 현재 우리가 겪는 일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꾸며 현재를 비판하는 방식이다. 김희선은 다소 가볍게 썼지만 이 작품을 곱씹어 보면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이 드러난다. 


 소설은 숲보다는 나무에 집중하기 때문에 미시사에 가깝다. 소설은 개인의 삶을 다뤄 이야기로 풀어내는 장르다. 역사를 그대로 문장으로 옮기면 아마도 소설이 아닌 역사책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렇다고 거시적 흐름을 배제하면 소설 또한 생명력을 잃는다. 시대가 흘러도 풍화하지 않는 글은 시대와 호흡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희선의 `공의 기원`은 축구공의 기원을 추적해 커다란 관점을 만드는 과정이 심사위원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인 전성태 소설가는 "근대적 상품을 매개로 인간에 대한 운명과 근대적 풍경을 말했다"면서 "소재를 가지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다"고 평했다. 


 김희선 소설가는 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강원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과를 수료했다.

 2011년 `작가세계`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라면의 황제`를 냈다.


[김규식 기자]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