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 본심 진출작 ④ 김연수 `그 밤과 마음`

메밀꽃 필 무렵 2018. 8. 23. 11:49

[이효석 문학상] 詩를 빼앗긴 시인 백석의 삶과 고뇌


북한에서 펜을 잃은 백석…`삼수`에서 겪은 고통 재현 한국 현실과

겹치며 울림
                                                                                                             •  김규식 기자 입력 : 2018.08.21 17:21:50


■ 본심 진출작 ④ 김연수 `그 밤과 마음`




 시인 백석(白石·1912~1996)의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다. 백석은 시인이었지만 평생 시를 마음껏 쓰지 못했다. 그는 광복 이후 북한에서 살면서 외국 문학을 번역해 소개했고 아동문학을 창작했다.


  백석의 글은 분단 이후로 남한 땅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그는 북한에서 한 명의 생활인으로 살았다.


 분단 이후 줄곧 평양에 머물렀는데, 어느 날 고난의 시간이 찾아온다. 백석은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 협동조합으로 내려가 펜을 꺾고 돼지와 염소를 길렀다. 오지를 일컫는 관용어로 쓰이는 `삼수갑산(三水甲山)`의 그 삼수다. 백석은 당시 `붉은 편지 사건`에 휘말렸는데, 당성(黨性)이 약하다는 이유로 삼수로 유배당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가 김연수(48)는 지난해부터 소설로 이 같은 백석의 삶을 재현하고 있다. 지난해 문예지 문학동네 가을호에서 `낯빛 검스룩한 조선 시인`을 발표했다.


  제19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김연수의 `그 밤과 마음`(현대문학 2018년 1월호)은 `낯빛 검스룩한 조선 시인`의 후속작이다. 대부분 자료를 바탕으로 쓰고 있지만 때로는 김연수의 상상력을 통해 복원한 것도 적지 않다. `그 밤과 마음`은 전작을 읽어야 흐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두 작품에서 김연수는 백석을 본명인 기행으로 부른다. 그는 백석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현실을 교차해 서술하며 인간적 고뇌를 부각한다. 시인 백석이 아닌 인간 백기행을 서술하면서 시인의 영혼을 짓밟은 권력의 실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백석은 전국적 명성을 떨치던 시인이자 지식인이었다. 전작에서 펜을 빼앗긴 백석은 이 작품에서 빼앗긴 펜으로 글을 쓰는 과정을 그린다. 자신이 과거에 썼던 시를 공책에 적으면서 또한 다시 난로에 태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생활인과 지식인의 경계가 시를 매개로 모이다 다시 불꽃으로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시인 백석은 그렇게 협동조합원 백기행으로 거듭나고 있었고 이를 김연수는 장면으로 포착해 그려냈다.


 폭설로 기차마저 멈춰버린 삼수에서 백석이 세찬 바람을 거슬러 가는 장면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그 밤과 마음`은 한국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말하고 글 쓰는 것에 검열이 있는 한 북한 당국이 시인 백석을 거세한 것과 과히 다르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예술가마저도 정치 성향에 따라 줄을 세우는 행태는 한국과 북한이 궤를 같이한다. 


 김연수는 박근혜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경험이 있다. 소설이 시대와 호흡할 때 독자의 공감을 얻기 쉽다는 측면에서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의 현실과 호흡하면서 `그 밤과 마음`은 울림이 깊다. 다만 이 작품은 독립된 단편소설이라기보다는 연작 형식을 띠고 있어 아직 평가하기에 이를 수 있다. 백석의 삶에 대한 재현을 넘어서는 김연수의 메시지가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기도 하다.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인 전성태 소설가는 "백석의 삶을 재현하며 스토리텔링에 주력한 작품"이라면서 "앞으로 작품이 이어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연수 소설가는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고 성균관대 영어영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했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냈고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등을 썼다.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규식 기자]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