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 본심 진출작 ⑦ 최은영 `아치디에서`

메밀꽃 필 무렵 2018. 8. 28. 17:51


[이효석 문학상] 나약해 보여도
괜찮아…서로 보듬고 감싸는 위로


        굴레에 짓눌리고 괴로워하는 평범한 젊은이들의 삶과

        연대 소설집 `내게 무해한…` 수록

                                

                                                                 •  김규식 기자 입력 : 2018.08.28 17:03:55


■ 본심 진출작 ⑦ 최은영 `아치디에서`





 최은영 소설가(34)의 작품에는 평범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물을 둘러싼 조건들만 평범한 것이 아니고 내면도 마찬가지다. 봄바람 같은 자극에도 아파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질지 못해 세속적인 성공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멀다. 갑남을녀로밖에 볼 수 없던 인물이지만, 최은영만큼 이들의 얘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소설가는 흔치 않다.


 제19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최은영의 `아치디에서`(21세기 문학 2018년 봄호)는 그가 그동안 선보인 작품 세계를 대표한다고 봐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 작품은 최은영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 펴냄)에 수록된 작품이다. 첫 번째 소설집 `쇼코의 미소`로 혜성처럼 등장한 최은영의 두 번째 책이다.


 `아치디에서`는 중편소설로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다. 주인공 `나`는 브라질 사람 랄도다. 어머니 집에서 얹혀살면서 무기력하게 세월만 보내는 인물이다. 하루 종일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그조차도 지치면 대마초를 피면서 현실을 도피한다. 랄도는 여자친구 일레인을 만나러 그녀가 있는 아일랜드로 무작정 떠나지만 차가운 반응에 낙담하고 만다. 랄도는 일레인을 세상을 향하는 유일한 끈으로 봤겠지만, 그 끈이 끊어지면서 무중력 상태로 부유하기 시작한다. 때마침 화산이 폭발해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서 그는 아일랜드 아치디라는 곳에 눌러앉고 만다. 아치디는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세 시간 넘게 자동차로 들어가야 나오는 시골 마을이다. 랄도는 아치디에서 한국에서 온 하민이라는 여성을 만난다. 하민은 세상의 모든 것들에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무심해 보이지만, 누구 못지않은 상처를 안고 산다. 하민은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아일랜드로 건너왔다. 하민이 일하던 병원은 호스피스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하민은 인간성을 잃고 부품으로 전락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한국을 떠났다고 토로한다. 대학원 간호학과를 새롭게 들어가 아일랜드에 정착하고 싶다고 하면서. 하민은 낮에는 말을 돌보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시험을 준비한다. 랄도는 그런 하민의 모습에서 점차 스스로 모습을 되찾는다. `아치디에서`는 부유(浮遊)의 이미지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품이다. 배경은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아치디라는 장소다. 주인공 랄도는 브라질 사람이고 한국 사람 하민을 만나지만, 뚜렷한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경계를 별다른 의지 없이 뛰어넘고 인간과 인간으로 손을 잡고 서로 보듬는다. 각종 국적의 젊은이들이 아치디에서 만나는 과정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 모임 같다. 이 작품은 경계가 사라진 공간에서 자신의 굴레를 던진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그린다. 마치 인간이 태어난 그대로 평생을 산다면 다소 나약할지 몰라도 섬세하고 순수하게 살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심사위원단은 최은영 특유의 매끄러운 문장과 섬세한 감수성에 호평을 내놨다.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인 정홍수 평론가는 "이야기를 잘 읽히게 쓴다. 외국을 무대로 화자도 외국인 화자를 설정해서 그렸다"면서 "나름 장치를 만든 것으로 아주 순조롭게 읽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최은영 소설가는 1984년 경기도 광명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했다. 2013년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을 썼다. 젊은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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