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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아트스페이스] 윤정미, 근대 소설의 장면을 사진 속에 담다

메밀꽃 필 무렵 2017. 6. 1. 17:35


[교보아트스페이스] 윤정미, 근대 소설의 장면을

사진 속에 담다

등록일201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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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아트스페이스(교보문고 광화문점 내)에서는 2월 기획전으로 2월 28일까지 소설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한 두 작가의 2인전 ‘소설 또 다른 얼굴’전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15일(월)과 16일(화)에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작가가 관람객과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해설이 있는 작가와의 만남'이 진행되었다.


2월 15일(월)에는 사진작가 윤정미가 관람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윤정미 작가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가진 물건들을 통해 성별에 따른 사회적 편견을 명징하게 보여준 ‘핑크&블루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사진작가다.


이번 전시에는 2008년부터 작업해 온 한국 근대소설들을 재해석한 사진들 중 『배따라기』, 『수난이대』,『오발탄』, 『화수분』, 『벙어리 삼룡이』,『B사감과 러브레터』,『메밀꽃 필 무렵』,『날개』,『산』,『독 짓는 늙은이』 등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근대 소설을 중심으로 11점을 선별했다. 

 

이날 관람객과의 만남에는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방민호 교수가 함께 해 작품의 모티브가 된 한국근대소설에 대한 해설을 더하고 문학과 사진이 서로 어떠한 영향과 해석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 윤정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 근대 소설을 사진으로 재현하게 된 이유를 묻는 방민호 교수의 질문에, 윤정미 작가는 우연히 아이들이 보던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을 읽다가 우리 사회의 모습이 많이 발전한 것 같지만 표면 뒤의 내적인 구조는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프로젝트의 시작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근대 소설들은 전쟁이나 빈부격차, 가족 간의 갈등, 사랑, 질투 등을 소재로 소설이 전개되어 나가는데, 이 소설들이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로 읽히는 게 아니라 현재를 환기하게 되고, 소설 속 장면들이 지금의 경험이라든가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윤정미 작가의 기존 스타일과는 좀 다르다. 잘 알려진 ‘핑크/블루 프로젝트' 같은 경우 존재하고 있는 피사체를 모아서 배치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작품들은 근대 소설을 ‘재현'하여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어디서 찍을 것이며 어떤 인물을 섭외하고 어떤 옷을 입히고 어떤 모션을 취하게 할 것인지를 다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던 것이다.


카메라로 현실을 포착(taking)하는 게 아니라 사진 작가가 장면을 설정(making)하는 이러한 ‘메이킹 포토'는 이미 70년대부터 활발한 장르다. 이 분야 거장들 중에는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단편 영화 한 편 찍을 수 있는 자본과 인력을 들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윤정미 작가는 그런 블록버스터급 사진에 비하면 자신의 작품은 홍상수 감독 작품 정도의 규모라고 말해 관람객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근대 소설들은 191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인데, 사진 작품을 보면 그 시대를 온전히 재현하기 보다는 현대적인 공간 속에 인물과 상황을 배치해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는 방민호 교수의 말에 윤정미 작가는, 재현을 위한 재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언밸런스한 부분들이 서로 만나 미끄러지는 부분, 어색한 부분들이 오히려 새로운 느낌을 수 있기에 의도적으로 그러한 연출을 했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방민호 교수는 개별 소설들에 대한 보다 깊은 설명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일례로, ‘소금을 뿌린 듯’ 흐드러지게 메밀꽃이 핀 달밤의 정경 묘사는 유명하지만 막상 『메밀꽃 필 무렵』의 주제를 묻는다면 단박에 답을 하기 어렵다.


『메밀꽃 필 무렵』은 평생 여자 없이 외롭게 살던 장돌뱅이 허생원이 한 처녀와 우연히 생에 단 한 번의 인연을 맺게 되고,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암시되는 동이의 등에 업혀 개울을 건너는 걸로 끝난다. 방민호 교수는 이런 일탈적인, 법외적인, 관습을 벗어난 욕망을 통해 생명이 움직이고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해석을 더하기도 했다.


이효석의 짧은 소설 『산』은 지주의 괴롭힘으로 몸을 의탁하던 집을 나선 한 머슴의 이야기다. 지주의 집을 떠난 머슴이라면 대개는 좋은 주인을 찾아, 혹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가게 마련인데 소설 속 인물은 산으로 간다.


방민호 교수는 이 작품을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연결시킨다.

밀은 인간의 자유는 나무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 자리에 고정된 나무에게 자유란 무엇일까?


그것은 다른 나무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라기에 타자로부터의 자유이며, 나무 스스로 자라난다는 점에서 자발성에 입각한 삶이며, 위를 향해 또 사방으로 가지를 뻗으며 자라는 모습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이다. 소설 속 인물이 산으로 가는 것은 나무의 세계로 돌아가 나무가 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방민호 교수의 질문에,

 윤정미 작가는 “운명이 아닐까"하는 답을 내놓았다.


윤정미 작가의 대답에 방민호 교수는 소설 『배따라기』를 예로 멋진 해석을 덧붙였다.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면 뭔가 이루려고 아둥바둥하지만 대개는 실패한다. 윤정미 작가는 삶이란 그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작고 보잘 것 없는 인간 존재의 순수성이 가장 크게 발동된 순간을 잡아내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이다.

 

미술은 이미지로 말을 걸고 문학은 언어로 말을 건다.

두 세계의 언어를 분명히 다르지만 서로 소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니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더 풍성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박수진 (교보문고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