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16년 제17회 '이효석문학상' 대상후보작 지상중계 -8- 조해진

메밀꽃 필 무렵 2016. 8. 1. 14:34


 [이효석 문학상]

막이 내리고 커튼콜 없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일자리 잃고 현실 견디는 전직 철학강사 출신편의점 알바생 눈에 비친 인생의 悲意 예리한 묘사

■ 본심 진출작 조해진 '산책자의 행복'



철학과 강사였던 미영은 대학 구조조정으로 실직한다. 엄마 병원비, 은행 이자를 내자 돈이 없다.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실존(實存)을 가르치던 강의실의 미영은 이제 기초생활수급자, 편의점 알바생이 된다. 생계비를 국가에 의탁하는, 진짜 실존의 가장자리로 내몰린 것이다. 미영은 나직이 말한다. "한 세계가 끝났다."


 미영을 라오슈(老師)로 따르던 중국 유학생 메이린은 가끔 편지를 보내온다. 답장은 쓰지 않는다. 메이린은 한결같이 미영을 추앙하지만 라오슈를 벗고 미영을 입은 지 오래다.


제17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조해진의 '산책자의 행복'(계간 '창작과비평' 2016년 봄호)은 이처럼 가늠키 어려운 삶의 방향성, 존재와 부재, 허무와 유의미, 원죄의식 등 꽤 묵직한 주제를 꿰맸다. 인생은 무대 위 연극과 같아서 장(章)이 끝나고 막(幕)이 닫힌다 해서 다음 장과 막이 없으리란 법 없다. 커튼콜 없이도 공연은 계속된다. 그래서 실존 앞의 굴종과 비참은 사치와 동의어가 된다. 계산대에서 담배를 주문했다가 자기 얼굴을 알아보고 목례만 한 뒤 떠나는 남학생의 뒷모습에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한다. "홍 교수님 아니세요?"라는 여자 손님의 질문에 "아닙니다"라는 '배교자의 언어'로 답해야 한다. 불쑥 편의점 문을 여는 밤중 손님처럼, 삶은 불안으로 가득하지만 계속 이어져야 한다. 라오슈이던 시절의 미영이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구나"라던 조언은 시간이 지나 이제 자신을 향한 말이 되고 만다. 미영은 혼잣말을 한다. "사는 게 원래 이토록 무서운 거니, 메이린?"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두 장면은 조해진 소설가의 심적 깊이를 가늠케 한다. 매상을 확인하러 온 편의점 사장 앞에 선 미영의 자세는 슬프다. "입과 거주지를 국가가 아니라 구체적인 한사람에게 의탁하고 싶다는 욕망"은 더는 떨어질 곳도 없이 나락으로 추락한 미영의 심리를 말해준다. 또 큰 개에게 쫓겨 온힘을 다해 달리지만 막상 뒤돌아봤을 때 아무도 없는 미영의 착각 장면도 압도적이다. 조해진 작가는 바로 이 두 장면을 위해 단편을 써온 것만 같다. 열아홉 페이지의 단편소설에는 버릴 문장이 없다. 죽음을 두고 "존재를 완성하고 성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추상적인 과정"이라는 라오슈, "죽음은 채워지지 않는 식탁의 빈자리 같은 것"이라는 메이린의 대화는 통찰을 건넨다. 메이린이 편지에서 독일 한 도시에서의 산책을 기억하며 "산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늘 그렇죠. 그저 걷는 것입니다"라고 쓴 부분은 인생을 비유해낸다.


심사위원 이수형 문학평론가는 "부재에 관한 소설이자, 부재를 향해 소멸해감에 대한 소설"이라며 "조해진은 소멸을 성찰하면서 그것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동시에 그것을 고발한다"고 평했다.


 심사위원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인간의 품위를 최소한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서 삶의 기반 자체가 다 붕괴된다는 것, 이 하나의 질문이 너무 간곡했던 단편"이라고 평했다. 1976년생인 조해진 소설가는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천사들의 도시'와 '목요일에 만나요'를 썼고,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를 남겼다.


 김유태 기자 입력 : 201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