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2016년 제17회 '이효석문학상' 대상후보작 지상중계 -1- 권여선

메밀꽃 필 무렵 2016. 7. 15. 13:56

[이효석 문학상]

삶과 죽음을 나누는 線…그 위에서 소설을 쓰다

한 여고생 살인사건에서 인생이라는 비극 탐구…작가적 역량 발휘한 수작

본심 진출작 ① 권여선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


허약한 존재들이 벌이는 만남과 헤어짐의 서사는 권여선 소설가(51)의 문학적 보폭이었다. 살아내거나 살아 있음의 증거로서 만나고, 죽음이나 이별로 헤어지고야 마는 어떤 방식. 비극 뒤의 존재들은 삶의 뒷골목에서 숙명처럼 마주친 고통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며, 희로애락의 절실한 표정을 짓곤 했다.


제17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권 작가의 중편소설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계간 '창작과비평' 2016년 여름호 발표)는 만남과 헤어짐의 '엇갈림'에서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언니 김해언이 살해되자 동생 김다언의 시공간은 폐허로 변한다. '언니이자 딸의 죽음'이란 절대적 사건은 가족을 몰락시킨다. 언니 사진을 들고가 성형을 하고, 엄마는 딸의 본명(김혜은)을 부여할 동생까지 출산하며 망각에 저항한다. 김다언은 수년 후 용의자 한만우의 집을 찾아간다.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밧줄 위에서 줄이 끊어졌을 때 어떻게 애도하고 치유받을지를 소설은 묻고 있다. 그래서인지 권 작가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캐는 문장을 독자에게 여럿 던진다. "결국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명료한 선을 긋는 사건"이라거나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와 같은 문장이 툭툭 튀어나와 읽는 이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긴장의 압권은 김다언이 한만우 집에서 그의 여동생과 맥주와 참외를 삼키는 장면에서 형성된다. 정면으로 삶을 응시하려는 분투적 자세 없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일러준다.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란 제목은 여고생 사망이란 소재를 신의 무지(無知)란 주제로까지 격상시키고 파헤친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란 신약 성경 구절(누가복음 23장 34절)을 뒤틀었다. 용서의 주체이고 전지(全知)했던 신이 망루 같은 삶에 오른 인간의 죄악과 희생을 외면할 때 허약한 피조물의 입을 빌려 권 작가는 질문한다. "죽었다 깨어나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신을 믿을 수 있어요?" 소설은 깊지만 한편으로 넓다. 가담자의 구원, 단죄로서의 앙갚음, 삶의 무(無)의도성, 생의 의지 등의 주제가 등장인물들의 언행에서 반복 되새김질된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라는 질문은 권 작가의 소설세계가 일군 경지를 일깨운다.


심사위원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김다언이 한만우 집에 들어서는 장면과 같은 깊이를, 다른 소설에서 느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뛰어났다. 사회적 재난과 횡액에 따른 삶의 붕괴 앞에서 애도의 방식과 문학의 역할을 묻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또 심사위원 이기호 소설가는 "한순간의 포착이 아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한 소설에 담아냈다.


권여선의 이전 작품과 확연히 다르며, 울컥하게 만드는 변화가 느껴졌다"고 평했다. 1965년생인 권 작가는 1996년 장편 '푸르른 틈새'로 상상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EBS라디오문학상 우수상, 동리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 숲' '안녕 주정뱅이'를 썼고, 장편 '레가토' '토우의 집' 등을 남겼다.

[김유태 기자] 입력 : 2016.07.14 17:0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