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문학' 교류행사

이념·전쟁이 만든 일그러진 자화상을 추념하다

메밀꽃 필 무렵 2019. 5. 24. 17:34



이념·전쟁이 만든 일그러진 자화상을 추념하다

 

한국문학번역원 국내 최초로
`이산문학` 교류행사 첫 개최
해외 15국내 14작가 결집

 

"정전 체제를 넘어 새 윤리로"
"입양 이후의 나는 문학 시민"
디아스포라의 고통 승화 모색

                                        

                                                                                 • 김유태 기자 입력 : 2019.05.21 17:10:16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 5층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다루는 이산문학 교류행사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이 열렸다. 왼쪽부터 정철훈 시인, 김혁 중국 소설가, 박미하일 러시아 작가, 신선영 미국 시인, 임철우 소설가, 조해진 소설가.

 

"디아스포라는, 저마다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떠나와, 낯선 땅에서 언제나 이방인, 소수자, 타자로서 살아야 하는 존재다." (임철우 소설가)

"한마디로 내게는 정치보다 인간이 먼저였다." (조해진 소설가)


지난 20,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우리나라 첫 시도로 열린 `이산(離散)문학` 교류 행사 현장엔 국적을 불문하고 `디아스포라의 길`을 지나쳐 왔던 전 세계 한인 예술가들의 자기 고백이 잔잔히 울렸다. 청중 100명은 숨죽여 독백에 귀 기울였고, 환원되지 못할 슬픔에 자신을 내맡겼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이산문학 교류 행사인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22일까지 개최한다. `팔레스타인을 떠난 유대인`을 지칭했던 디아스포라(diaspora)는 제국주의, 전쟁 발발, 이념 갈등, 지독한 가난에 휘말려 반도를 등졌던 한인에게도 익숙한 은유다. 고국을 찾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당사자 15인은 이날 문학을 통한 내적 치유를 역설했다.

분단은 절절한 화두였다. `이념적 이분법`을 지양해야 한다는 주문은 그래서 나왔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임마누엘 킴 평론가는 "통일이 이뤄지기 전에 남북한이 극복해야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서로에 대한 이념적 편향이다. 각 측의 이념이 서로를 `사람`으로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새 윤리`를 강조한 김연수 소설가는 "한국문학 대망론이 있다면 그건 정전 체제를 단숨에 뛰어넘는 형상이 돼야 한다. 콤플렉스와 죄의식을 뛰어넘는 일인 동시에 새로운 체제에 걸맞은 새로운 윤리를 구축하는 일이 될 듯하다"고 후일을 들여다봤다.

데뷔 이후 15년간 고려인, 재일 조선인, 유학생, 해외 입양인 등 디아스포라를 다뤘던 조해진 소설가는 단편 `동쪽 ()의 숲`에 남긴 `개인은 세계에 앞서고, 세계는 우리의 상상을 억압할 수 없다`란 문장을 인용하며 "살았고, 살려 했고, 살아 있는 구체적인 한 인간을 그리려 했다. 이는 소설가이자 후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하는 예의"라고 말했다.

`21세기 디아스포라`는 현재형이란 진단도 이색적이었다. 구소련 지역의 국가들이 자국 내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시켜서다. 모스크바에 거주하며 작가로 활동하는 박 미하일은 "구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에서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해 한인 동포들이 러시아로 떠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한인 동포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잘 모른다"고 알려왔다.

입양으로 모국어를 잃은 경험마저 `현대판 디아스포라`였다. 미네소타주()에 거주하는 신선영 시인은 생후 8개월째던 1975년 입양됐다. 신 시인은 "카프카 `변신`의 그레고르처럼 일방적인 변신을 겪었다. 한국 태생 미국 시민이자 `문학 시민`으로서 이 세상에서 내가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하는 건 평생의 여정으로 계속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왜 쓰는가`라는 자기 물음을 좇는 그들의 고백은 하이라이트였다.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아쿠타가와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던 재일동포 3세 최실 소설가는 "작가들은 현실의 영웅들이었다. 내게 희망을 주었다. 내 목소리가 없는 줄 알고 있을 때 목소리를 주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고 단언했다.

 

강영숙 소설가는 `상처와 역사`를 이야기하며 "외로운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 고통의 대가로 사유의 힘을 얻는다. 그 사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추방된 곳, 떠나온 곳을 상상하게 만든다"고 담담히 말했다.
행사장에는 경기도미술관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산을 넘어`에 출품됐던 재외 예술인의 작품이 걸려 눈길을 끌었다. 문 빅토르의 `1937년 강제이주열차`, 리 옐레나의 `여자 방랑자들`, 주명수의 `집으로 가는 머나먼 길` 등의 그림은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대면했던 고통의 정면을 보여줬다.

[김유태 기자][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