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문학상] 닿으려 하지만 닿지 못하는…낮에 뜬 달 같은 인간관계
어머니 떠난 뒤 남은 부녀의 고독과 오해…미묘한 포착으로 공감
• 김규식 기자 입력 : 2018.08.14 17:03:35 수정 : 2018.08.14. 19:04:21
■ 본심 진출작 ① 권여선 `모르는 영역`
낮달이라는 말이 있다. 해 떨어지기
전 푸른 기운이 남아 있는 하늘에 뜬
흰 달을 말한다. 낮달을 보면 어쩐지
서늘한 느낌이 든다. 밤에 떠야 할 달
이 왜 대낮에 부유하고 다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왜 땅 위
의 이 좌표에서 당신을 만났을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 섞이지 못하고
어딘지 모르게 겉돈다. 심지어 아주
가깝다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까지 별
반 다르지 않다.
제19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권여선 소설가(53)의 `모르는 영역`(ASIA 2017년 겨울호)은 어딘지 섞이지 못하고 떠다니는 인간 관계를 예리하게 포착해 풀어놓는다.
작품에는 아버지 명덕과 딸 다영이 등장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어색한 관계를 이어가는 부녀다. 명덕은 어느 날 새벽 골프를 치고 보드카 몇 잔을 마신 뒤 클럽하우스를 홀로 빠져나온다. 도시적 감수성을 지닌 명덕은 다영과 통화한 뒤 곧바로 딸이 있는 장소로 차를 몰고 간다. 낮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명덕은 무언가 일탈을 도모하는 느낌마저 준다.
봄날의 나른함이 주는 묘한 취기가 이끄는 종착지가 딸이 있는 장소라니. 서늘함이 밀고 들어온다. 다영을 만나려고 내비게이션을 찍고 운전하는 모습과 봄날의 시골을 묘사한 장면은 묘하게 어긋난다. 다영은 다큐멘터리를 찍는 동료 세 명과 함께 있었다. 명덕은 아무리 노력해도 동료 이름조차도 외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밥값 계산 문제로 식당 주인과 갈등을 겪는 와중에 괜스레 명덕과 다영은 싸움을 벌이고 만다. 체면을 차리려는 명덕과 그런 아버지 모습이 못마땅한 다영은 끝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낸다.
명덕은 오랜만에 아버지를 봤는데도 동료만 챙기는 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이 작품은 갈등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겉도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현대인이 겪는 단절과 고독을 드러낸다. 3인칭 시점으로 포착한 부녀는 소통이 단절된 시대 사랑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서사적 긴장감이나 치열함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마치 사진을 찍듯 관계의 미묘한 지점을 포착하는 솜씨는 심사위원단의 호평을 받았다.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권여선이 잘 쓸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가 부녀 간의 미묘한 것을 포착했고 재미있게 풀어냈다"고 평가했다. 여운을 남기며 결론을 맺는 듯하지만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목은 곱씹어 볼 만하다. `왜 아침달 낮달 저녁달이 아니고 모두 낮달인가 생각하다, 해 뜨고 뜬 달은 죄다 낮달인 게지, 생각했다.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 이를 술로 표현하자면 아침술, 낮술, 저녁술 모두 없이 해 뜰 때 마시면 낮술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언제 마시든 다 똑같은 술이지만 낮술이라고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때로는 모르는 영역은 모르는 대로 두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권여선은 1965년 태어났으며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상상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받았다.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 숲` `안녕 주정뱅이`를 썼고, 장편소설 `레가토` `토우의 집` 등을 발표했다.
[김규식 기자]
[ⓒ 매일경제 &mk.co.kr,]
'이효석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본심 진출작 ③ 김봉곤 `컬리지 포크` (0) | 2018.08.20 |
---|---|
■ 본심 진출작② 김미월 `연말 특집` (0) | 2018.08.20 |
제19회 이효석문학상 1차 독회 (0) | 2018.08.15 |
강영숙 '어른의 맛' 2017년[이효석 문학상] 수상집출간 이효석문학상 (0) | 2017.09.07 |
표명희 편- 2017년 제18회 '이효석문학상' 대상후보작 지상중계 (0) | 2017.08.10 |